바람이 불지 않는 숲 > 창작시의 향기

바람 잘 날 없었던 숲에 불현듯 바람이 멈췄다
바람이 되지 못할 들숨과 날숨만 남은 채로
알 수 없는 적막만이 멈추지 않고 있다

바람 소리에 덮였던 소리가 들린다
썩지 못한 재작년의 재작년 낙엽 뒹구는 소리
기나긴 가뭄에 나무 껍질이 바싹 마르는 소리
산짐승 우는 소리조차 바람에 묻혔던 것인가
바람에 가려진 모든 소리가 튀어나와
저마다 오래 묵어 낡고 먼지 낀 소리를 낸다

이 모두를 제쳐두고 바람만이 울던 숲에
울음이 그치니 울음 아닌 소리만 나온다
울음 아닌 소리도 실은 울음이겠지만
다만 울음이 뭣인지도 몰랐으리라
제가 내는 소리가 울음인지도 모르고
억누른 한세월 풀어내기에 바쁠 뿐

행여나 다시금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면
그때까지 이 숲이 오롯이 남을까
용케도 불똥 떨어지는 소리만은 나지 않으니
당분간은 적막에 가까운 소란만 조금 있겠지
모든 소리가 멈추고
진정 그 무엇도 남지 않게 될 때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