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잡이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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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푸석한 시멘트 벽에서 구석으로
고단한 흑백의 눈알을 굴리던 어느 여윈 여자가
울먹이며 매운 벽돌의 멱살을 잡고 있는 골목
무게를 깍아내지 못한 시간들을 밟아야 하는,
기대고 절뚝거려야 내려갈 수 있는 이 빠진 계단들의
가슴 누렇게 비추는 가로등과 수많은 인연의 줄기로
묶여 선 전봇대 위로 커다란 달이 구름 가지를
헤치고 하얀 숲으로 숨어들자 어둠과 이별이 무겁고
무서웠던 여윈 그 여자는 절뚝거리다 절뚝거리다
쓰러질듯 골목 끝 환한 전깃불 속으로
지우개도 없이 지워졌다.
머물수 없었던 이유를 물으며 왼손잡이가 살던 집
매운 벽돌의 멱살을 잡고 밤새도록 부르고 불렀던
말간 왼손잡이의 이름
그 왼손잡이의 이름이 동그랗게 찻잔을 돌며
시간을 맴돌다 서서히 녹아갔다.
시간의 무게가 내려놓은 단어는 유리창이
멀미 할 만큼, 손이 하얗게 되도록 닦아내고
닦아내야 했던 지움이고 잊음이었다.
어깨 아팠던 균열로 길 모퉁이 이가 부러질듯 한
약속 없던 바람에도 한참을 멈춰 서서 서로 다른곳을
보며 다른 눈빛과 시간으로 백지가 되던 모진 오후가
서서히 어둠에 묻혀 갈 때쯤 왼손잡이는 아무 말도
없이 떠났다.
애처롭고 작은,여윈 그 여자를 거리에 남겨 둔 채
왼손잡이는 돌아보지도 않고 두꺼운 밤 속으로
묻혀 들어갔다.
여윈 그 여자는 찢어진 백지 반쪽을 들고 한참을
오래토록 서 있었다.
버스가 끊어지고 오랜 사랑도 끊어진 시간
여윈 그 여자는 절뚝거리다 절뚝거리다 돌아섰던
왼쪽길을 수도없이 돌아보며 멈 짓거리다 지워졌다.
어느 매운 빨간 벽돌 속에서 환하게 웃는 왼손잡이
지우지 못했던 왼쪽의 기억처럼 왼쪽에 누웠다.
애처롭게 작고 여윈 그 여자는 지금쯤 어디서
왼손을 깨물고 살까
아마도 머리위로 작은 나비 한마리라도
왼쪽으로 날았겠다.
댓글목록
너덜길님의 댓글

시마을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지라
잘 몰랐는데, 작은미늘님의 시를 쭈욱
읽어 보았습니다
완성도를 차치하고서라도 거침없이
써내려가는 기운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봤으면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작은미늘님의 댓글

감사 합니다.시인님 맑은 마음으로 분발해서 좋은 글로 뵙겠습니다.
짧은 빗자루로 열심히 마당을 쓸었지만 아직 나무밑에 있는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