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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바닷가를 달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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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고평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30회 작성일 20-04-19 07:35

본문

말은 바닷가를 달리고

  

말을 타고 바닷가를 달린다

내비게이션이 없어도 말은 절대 바다로 뛰어들지 않는다

물결 사이로 시간이 숨겨놓은 은빛 절망이 보이기도 한다

잠수정을 타고 우주로 가는 것 같다

  

말은 바다와 나란히 서서 앞만 보고 달린다

내 집 마련 꿈을 좇는 맞벌이 부부처럼

  

바다가 말을 배우자로 받아들였다는 기록은 없다

사막을 건너던 말이 바다를 사랑한다는 것도

운명적이긴 하지만 슬픈 이야기다


은빛 절망에서 마른 모래 냄새가 난다

운명적인 사랑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운명을 사랑하면 운명적인 사랑이 가능한 것인지

다른 별로 날아가 사례를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잘 때도 날갯짓을 멈추지 않는 군함새가

미래에 먼저 도착하는 건 가장 피하고 싶은 악몽이다

  

몇 개의 미래가 어깨를 후려치듯 스치며 지나간다


말은 웬만한 미래는 추월할 정도로 빠르지만

달리기만 할 뿐 정작 미래에는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사람들이 먹어가는 나이처럼

  

어쩌면 내가 운명적인 사랑의 실체를 밝혀낼 때쯤

말은 바다보다 더 넓은 사막에 도착해

머리를 허공에 묻어둔 채 깊은 잠에 빠질지도 모른다

 

내 영혼을 꼬리에 매단 말이 물비린내를 밟으며 힘차게 달린다

바다가 어디까지 따라올지는 나도 말도 알 수 없다

   

은빛 절망이 별에서 시작됐는지

사막에서 시작됐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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