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
페이지 정보
작성자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6건 조회 683회 작성일 20-05-19 00:52본문
내 어머니는 석류알을 낳으셨나 보다.
나는 시들어가는 열매 껍질 안에 찬란한 꽃잎을 열어 본 적 없다.
축축한 부엽토 위에 무릎 세우고 쭈그려 앉아,
언젠가 수국꽃잎들이며 아주 발그레한 다알리아꽃잎들 사이로 신비한 언어처럼
외계어에 가까운 싱싱한 비늘의 탄력으로 그 아이가 오리라
상상하였던 적은 있다.
나는 주홍빛으로 투명하며 견고한 원을 이루어 풀잎 끝을 아슬아슬 굴러다녔다.
내 어머니는 아마 폭주하는 은하수 속에서 간신히 풀잎을 이룬 천 조각들을 끄집어내어
나를 기워내셨던 것 같다.
그리하여 세포들조차 청록빛인 그 어느 어둠 속에서,
여기 나를 각혈해 놓았던 그 어머니는 누구셨나
내 감각 속에 그 궁금함을 깊이 파묻었던 것이다.
어릴 적 꽃말을 모르던 그 마을에 놀러가 어린 마음에 바라보던 하늘이 균열 없이 참 아팠다.
우산을 펼쳤고 시야는 한없이 막막한 손금 안에 젖어오는 햇빛에 가렸다.
파란빛깔은 메스처럼 내 젖빛 손등에 예리한 금을 그었다.
그러면 그 아이는 흙 묻어 더러운 치마를 활짝 올리고
풀숲 안으로 들어가 쪼그려 앉아 오줌을 누는 것이었다.
나는 그 아이가 청록빛 풍선처럼 부풀어
그 확장해 가는 황홀 속에 간절한 언어를 채워넣지도 못하고
가는 철조망에 빨간 녹이 나날이 퍼져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따가운 개미들이 내 안구 위로 기어올라왔다.
생경한 리듬으로
그 아이가 내게 웃었다.
흩어져 떨어지는 음표들 사이로
빨간 가을이 한 점에 모여 농익어 가는
작은 꼬추가 나는 따가왔다.
표정 없는 대리석 조각처럼
누군가 그려 놓은 그 아이의 얼굴은
저절로 벌려진 입 안에 주홍빛으로 견고한 석류알을 깨무는 듯 보였다.
나는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고 소리를 질렀다.
그 아이는
마치 두고 가는 것이 없나
마지막으로 둘러보며 괴로워하는 것처럼,
투명한 손으로 내 표정을 어루만지는 것이었다.
댓글목록
이장희님의 댓글
이장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석류로 이런 근사한 시가 나오는 군요.
시를 무척 잘 빚으시네요.
눈이 호강하고 갑니다.
좋은 시 잘 감상하고 갑니다.
늘 건필하소서,코렐리 시인님.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제 시를 너무 잘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덜길님의 댓글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솔직히 시의 내용은 완벽히 파악하기가 버겁고,
방법론적으론 참 부럽군요,
시가 잘 되지 않는 요즘 고민이 많았는데,
시작에서부터 마지막 연까지 긴숨을 유지하고,
읽힐 수 있는 매력이 있습니다,
부러운 지점이구요,
자주 뵀으면 좋겠습니다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과찬이십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싣딤나무님의 댓글
싣딤나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살아 계시네요 자운영 꽃부리님
자운영꽃부리님의 댓글의 댓글
자운영꽃부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그냥 조용히 왔다가 시만 놓고 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