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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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는 석류알을 낳으셨나 보다.
나는 시들어가는 열매 껍질 안에 찬란한 꽃잎을 열어 본 적 없다.
축축한 부엽토 위에 무릎 세우고 쭈그려 앉아,
언젠가 수국꽃잎들이며 아주 발그레한 다알리아꽃잎들 사이로 신비한 언어처럼
외계어에 가까운 싱싱한 비늘의 탄력으로 그 아이가 오리라
상상하였던 적은 있다.
나는 주홍빛으로 투명하며 견고한 원을 이루어 풀잎 끝을 아슬아슬 굴러다녔다.
내 어머니는 아마 폭주하는 은하수 속에서 간신히 풀잎을 이룬 천 조각들을 끄집어내어
나를 기워내셨던 것 같다.
그리하여 세포들조차 청록빛인 그 어느 어둠 속에서,
여기 나를 각혈해 놓았던 그 어머니는 누구셨나
내 감각 속에 그 궁금함을 깊이 파묻었던 것이다.
어릴 적 꽃말을 모르던 그 마을에 놀러가 어린 마음에 바라보던 하늘이 균열 없이 참 아팠다.
우산을 펼쳤고 시야는 한없이 막막한 손금 안에 젖어오는 햇빛에 가렸다.
파란빛깔은 메스처럼 내 젖빛 손등에 예리한 금을 그었다.
그러면 그 아이는 흙 묻어 더러운 치마를 활짝 올리고
풀숲 안으로 들어가 쪼그려 앉아 오줌을 누는 것이었다.
나는 그 아이가 청록빛 풍선처럼 부풀어
그 확장해 가는 황홀 속에 간절한 언어를 채워넣지도 못하고
가는 철조망에 빨간 녹이 나날이 퍼져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따가운 개미들이 내 안구 위로 기어올라왔다.
생경한 리듬으로
그 아이가 내게 웃었다.
흩어져 떨어지는 음표들 사이로
빨간 가을이 한 점에 모여 농익어 가는
작은 꼬추가 나는 따가왔다.
표정 없는 대리석 조각처럼
누군가 그려 놓은 그 아이의 얼굴은
저절로 벌려진 입 안에 주홍빛으로 견고한 석류알을 깨무는 듯 보였다.
나는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고 소리를 질렀다.
그 아이는
마치 두고 가는 것이 없나
마지막으로 둘러보며 괴로워하는 것처럼,
투명한 손으로 내 표정을 어루만지는 것이었다.
댓글목록
이장희님의 댓글

석류로 이런 근사한 시가 나오는 군요.
시를 무척 잘 빚으시네요.
눈이 호강하고 갑니다.
좋은 시 잘 감상하고 갑니다.
늘 건필하소서,코렐리 시인님.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제 시를 너무 잘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덜길님의 댓글

솔직히 시의 내용은 완벽히 파악하기가 버겁고,
방법론적으론 참 부럽군요,
시가 잘 되지 않는 요즘 고민이 많았는데,
시작에서부터 마지막 연까지 긴숨을 유지하고,
읽힐 수 있는 매력이 있습니다,
부러운 지점이구요,
자주 뵀으면 좋겠습니다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과찬이십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싣딤나무님의 댓글

살아 계시네요 자운영 꽃부리님
자운영꽃부리님의 댓글의 댓글

그냥 조용히 왔다가 시만 놓고 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