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흔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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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흔 살
나는 일흔 살
항상 잠긴 문을 열고 들어와
현관문을 닫으니 혼자다
종일 비워둔 공간에 집을 지은 적막이 묵직하다
적막은 쌓아두는 게 아니라 어디로든 흘려보내야
한다 생각하며 난초무늬 다기에 찻잎을 띄우고
오래 차茶를 우렸다
맑은 바람 끝에서 피어나는 눈록嫩綠의 차향이
몸 안 가득 찬 울음들을 씻어낼 거라 믿었다
무엇 하나 남아있지 않은 순간까지 핏빛을 쏟아내며
돌아가는 석양이 더욱 선명해지는 것을 본다
그 사이로 문득 오래된 풍경이 바람처럼 지나가고
사람이 그리워 틈틈이 귀를 여는 동안 찻물이 다 끓었다
먼 순례의 길 같은 하루를 애써 걸어온 나에게
차 한잔을 따른다
차茶는 마시는 게 아니라
오래 천천히 몸 깊이 흐르게 하는 것
나는 일흔 살
비로소 한 찰나의 적막에 물드는 시간이다
댓글목록
sundol님의 댓글

저두 일흔살인데..
구구절절 공감이
담채님의 댓글의 댓글

반갑습니다.
저는 일흔이 좀 지났는데 몇해 전 써둔 것을 올려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