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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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비가 내렸습니다.
눈 먼 송아지 풀잎을 씹는
그것의 정소(精巢) 안에서도 비는
여지 없이 내립니다.
사립문을 닫고 조용히 비가 두드리는 지붕을
듣습니다.
나는 살아도
저 투명한 물 위 뜯겨져 발 동동 구르며 떠다니는
엉겅퀴풀잎처럼 살겠습니다.
빗소리가 내 혼잣말을 듣습니다.
살아가렵니까? 사립문 바깥에는 이미 아무도 없는데.
부르튼 당신의 발 울며 닦아주는
저 먼 바다소리 들리십니까?
당신은 저 심연 어디까지 들어가렵니까?
빗소리가 텅 빈 내 혈관 안으로 들어옵니다.
외양간에서는
송아지가 쿨럭 쿨럭 각혈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뜨거운 순간으로 환원하여 오직 하나의 빛깔 비린내로
차가운 땅 위에 내던지는 것입니다.
꼬리를 간혹 휘둘러
모기처럼 왱왱거리는 흉통에 매질을 하면서
송아지가 빗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저 가슴 속 깊이
참을 수 없이 근질거리는,
가슴 속 깊숙이
무언가 간절한 것이 영원히 문을 닫는,
칼 끝으로 후벼파는,
살아도 이것을 들으며 조용히 구름 바깥으로
능선 바깥으로 봉우리를 이루는 높고 외로운 형체 바깥으로
물러서며 살겠습니다.
그대여,
이 투명한 빗줄기 안으로
들어서지 말아주세요.
댓글목록
너덜길님의 댓글

저는 어릴적에 빗소리가 좋아
온종일 비 내리는 처마 밑을,
즐거이 서 있기도 했더랬습니다만,
송아지의 정소에서도,
지붕에서도,
빗소리 들린다니,
졸리운 아침을 깨우치는 감수성에 눈과 귀를 똭,
똭 하고 열게 되는 시입니다.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며칠 전 비가 계속 내리기에 그 비와 어릴 적 보았던 비의 기억이 겹치더군요.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피플멘66님의 댓글

문제점을
보려면 거울을
보아야 잘 보죠
거울속에
해답이 있을 것
같습니다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감사합니다.
봄빛가득한님의 댓글

풍경을 그려가는 동안
빗소리가 가슴속 깊이 무지갯빛 자수를 놓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듭니다.
힐링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시인님!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머물러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