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정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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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에는
연록빛 우산을 펼치고
허기가 진다.
가지에 잔뜩 매달린 잎들이
하나 하나 잘 닦인 비늘처럼 허공에
나부끼거나,
슬그머니 허공에서 불타버리거나,
떨어져 내 망막 위에 깊숙이 박히는 것도
다 허기가 진 때문이 아닌가?
흙 위에 눕는 하늘이
연한 바다빛깔이다.
심지어는 파도소리마저 들려온다.
흙알갱이 하나 하나가 제대로 눕지도 못하고
실바람에 뒤척뒤척하는 것은,
바다가 그립기 때문일 것이다.
바다도 그립지 않을까,
산슈우열매처럼 조찰하게
누군가 열어놓고 간 중문(中門) 어렴풋이 보이는 비릿한 정원.
아카시나무 칙백나무
더운 햇빛 속 습기
청록빛 물 안을 유영하는 금빛 잉어들처럼
진주를 품고 여름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다들 저렇게 모락모락
청연(靑煙)을 향해 속삭임을 듣는 드높은 허공이리라.
내 발은 항상
저 외롭고 높은 구름 속
가난한 정원을 딛고 있었다.
빈 벤치에 다가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부운(浮雲)을 쪼던
공작새도 열병을 앓고 있던 모양이다.
나는 타오르는
벤치 위에 앉아 영원한 것에 고개 기대어
시를 쓴다.
댓글목록
봄빛가득한님의 댓글

주상절리,
신이 다듬어 놓은 정원인가요?
눈 감으니 환하게 잘 보이네요.
시인님은 복 받으신듯,
구경 잘 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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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無等)을 보며(서정주)
가난이야 한낱 남루(襤褸)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山)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靑山)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목숨이 가다 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午後)의 때가 오거든,
내외(內外)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靑苔)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정원에 노닐다 가심을 감사드립니다.
브루스안님의 댓글

이 정도의 문장력과 표현력. 분이
여지껏 미등단이라니
우리 문단이 얼마나 썩었는가를 반추할수
있네요
돈없는 사람은 글도 못 ㅆ나여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고맙습니다. 그런데 저를 너무 과하게 평가하시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