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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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
석류 한 알 한 알이 보석같다고,
마치 혈흔같다고,
얼마나 病이 깊길래
핏방울이 이리 영롱할 수 있냐고,
너는 감탄하는 것이었다.
그래, 지금 후박나무 잎새들 사이로 비가 오고 있다.
덜컹거리는 유리창에 혀를 대보면 신맛이 난다.
네 심장의 고동소리는 빗소리와 똑같이 어른거리는 청록빛이다.
나는 네 가슴에 귀를 대고
너의 심장소리를 가만히
저 언어 바깥의 것으로 환원해보리라 생각한다.
세상에서 가장 황홀한 사랑이
방금 각혈해 낸,
견고한 자수정 안에 소용돌이치는
그 걷잡을 수 없이 세찬 파도여.
하얀 포말이 조용히,
들끓는 격정 속을
오르락내리락함이여.
너는 언젠가
길게 뻗쳐올라간 후박나무 가지 끝
몸부림치는 이파리 하나인 채
내게 온 적 있지 않은가.
익사체 하나가 멀리 떠다니는
비췻빛 물결의 소실점을
네게 조곤조곤 말해주리라 생각한다.
자수정 안으로 걸어들어가라고.
그리하여 다자이 오사무와 야마자키 도미에가
손을 꼬옥 맞잡고 투신한 그 자리,
참나무 한 그루
깊이 모를 뜨거운 그늘
넘싯거리는 강물
그 속에 결코
정지하는 법 없이 피를 흘려내라고.
깨진 거울 예리한 조각을
너의 피로 씻어내는
내 황홀이 항상 네 곁에 있는 것이니.
나의 언어를
자수정이 으깨어지는 시디 신 즙 속에 섞는다.
크리스탈 보울에 담긴
너는 내 썩은 폐로부터
흘러나오는 피를 핥아준다.
시절은
초여름.
소리가 울리지 않는
피아노 건반처럼
석류알의 침묵에
균열이 가는 일은 없다.
댓글목록
봄빛가득한님의 댓글

어제 죽은 이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지금 이 순간..
그래서 석류 한 알이 저리도 붉디붉은 것인지..
석류알의 침묵에 대해..
묵상해 봅니다. 시인님!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예리한 시안을 갖고 계시네요. 봄빛가득한 님 시 올려주시길 기다리고 있는 독자가 여기 있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