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의 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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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314회 작성일 20-07-10 00:04본문
冊을 펼칠 때마다
이야기가 이야기를 낳고
冊을 닫을 때마다
이야기가 다시 이야기를 낳고
내 어릴 적 어머니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는
부풀고 부풀어 이제 山이 다 되었네.
페이지 귀퉁이 뜯겨나간
아무리 사소한 이야기라도
그 안에는 굴곡이 있고 질감과 원근(遠近)이 있지.
너의 발자국이 찍힌 계곡과 바위마다
참나무 오리나무 배꼽 드러낸 자작나무 팔을 길게 뻗어 위로 위로 목을 뻗으면 긴 꼬리 깃털이 햇빛에 반쯤 젖어 퍼드득 아카시나무 구릉을 뒹굴어 칡넝쿨 멍든 자리마다 자운영 뽀드득 얼굴을 닦고 초여름하늘이 제법 끼리릭 끼리릭 꿩이 음지에서 우는 소리 찔레꽃 꽃술 펄럭이는 물가로 뭉게구름에 말을 걸다가
내 어릴 적 어머니께서 들려주신 이야기의
수많은 표정들 청록빛
깊은 삼림(森林)의 소리를 울려내고 있나니.
길 없는 삼림(森林)
원래 너의 것이었던 그
冊을 펼칠 때마다
사슴이 되어버린 네가
건너편 책장(冊張)으로 숨어 버리는
그 미세한 소요(小搖)......
오매 불설워 자갈돌 맑은 물 안에 잠긴
물보라 튀기는
섬을 밟고
붕 뛰어
또다른 섬을 밟고
연꽃밭 너머
내 어머니 찾아가는 길.
지느러미 심연에 묻고
닳아빠진 날개로 바위섬 한가운데 신목(神木)을 찾아갈까.
물방울 조금 묻은
날개 돋친 발굽
해가 안산 위로 솟아
바위 위 조그만 사당(祠堂) 사슴 한 마리 웅크린
탯줄이여
붉은 천이여 물 속으로 길게 길게 풀어져
그 아이를 찾아다오.
그 아이는
부서진 팔다리 부서진 얼굴 부서진 폐와 자궁
발바닥에 열꽃 가득 고인.
내 이야기는
어느 썩어가는 둥치 곁에 주저앉아
고개 돌려 어룽지는 젖은 그물 흰 뼈와
헐떡이는 황홀 나는 어디쯤에서
이 이야기를 쫓아가고 있나.
사각사각 빈 책장(冊張)에
무언가 적히고 있는 소리.
귀 기울여보면
내 심장이 내 호흡을 놓치지 않고 있는
소리였다.
이야기 속의 나는
늦은 목련꽃 담장에 숨어 봄비를 맞기도 하고
짙은 녹음 어른어른 잎비린내 코를 찌르는
산길을 혼자 걸어가기도 하였네.
칡범도 숨는
산령(山嶺) 오리나무
왜 혼자서 우나.
감긴 나이테를 풀어
시간 속 숨은 이야기를 이어나가면
어머니 아직 페이지를 접지 않으셨네.
어머니 업으신
새하얀 여백과 검은 혼란이 뒤섞여
노래가 그치지 않네.
노래는
노래는 어디서 오나.
어머니 가슴이 시든 호박꽃처럼 말라붙은 뒤에도
젖이 흘러넘치는 강
부르튼 산허리를 이등분하는
나 어디에서
그 아이를 찾아야하나.
그 아이의 뼈를 주워야하나.
댓글목록
봄빛가득한님의 댓글
봄빛가득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이는 저기서 날 오라 손짓하는데 문득 뒤돌아보니 아이는 온데간데없고 백발이 성성한 초로만 남아 있네요.
오매 불설워,
아, 나의 어머니!
나의 어린 날이여!
그날의 가슴 먹먹한 이야기, 아직도 끝맺지 못한 그날의 노래가 담긴 한 권의 책 속에
오늘밤 머물다 갑니다.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도 그 책 속 노래가 아주 그리워지네요. 지금도 계속 쓰여지고 있는 그 노래.
좋은 하루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