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에 고래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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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의 그 조그만 눈에 눈맞춤하여 본 적 있니?
햇빛에 달구어진 시멘트
새하얀 비탈길 오르다보면,
동백꽃 숭어리 낮은 담장 너머 내 마음 흔들려 산산이
청록빛 넘실넘실 낡은 담장 따라
초여름 하늘 물결 머얼리
퍼져나가는......
이 집 담장에서 저 집 담장으로
고래 한 마리가 헤엄쳐 옮겨다니며 날
쫓아온다.
청자기빛 허공에 흩어지는 피아노
흰 건반 검은 건반이
메시앙의 파열음을 낸다.
동백꽃은 빨간 빛깔로 눈 멀었고
빨간 빛깔로 자궁이 쿡 쿡 아프고
고래는 아직 해 지기 전 파란 빛깔이다.
나는야 가시 둔덕 양귀비꽃 씹으며
주홍빛 취한 입술
비틀거리는 배(舟)
작열하는 햇빛의 문과 햇빛의 복도로 들어선다.
동백꽃의 혈육(血肉) 속이다.
동백꽃들 바람에 종소리 흘려넣으며
절정으로 휙 휙 달려나가는
요란한 적요 속이다.
저 윤기 도는 이파리들 심연의 속에서
고래 한 마리 몸을 들썩인다.
나는 망막 위에 돋아난
이 예리한 비늘들이 싫어.
부끄러워서 싫어.
내가 중학생 때 복도 위를 하늘하늘 지나가던
어느 여학생의 치마 아래
드러났던 새하얀 종아리가 싫어.
2차 성징이 진행 중인
저 가난하고 보드라운 거리들이 싫어.
담장을 따라가다 보면 비린 철제문들
파란 페인트 칠해진
말려올라간 치마와
그 안에 파닥이고 있을 인어(人魚)들이 싫어.
통영이여,
네게 귀 기울이면
너는 그 하이얀 벽이 구름 위에서 고래가
물을 뿜어오듯이
차갑게
내게서 멀어지거나 혹은 가까와진다.
살을 저미는
전율을 찾아
나는 나를 사랑해 본 적 없지만,
나는 아직 죽어본 적 없지만,
저 동백꽃 두터운 이파리는
시각시각 스스로를
해체해가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의 노래
먼 해원을 향해
등대여 마음이 다친
내 통각(痛覺)을
그저
황홀한 부르짖음
힘차게 펄럭이는
천갈래 만갈래 새하얀 파도들
거둬들이며
아 수줍음 곱게 여미는
내 누이같은 통영의 거리!
댓글목록
봄빛가득한님의 댓글

고래가 춤추는 좁은 골목길에서 어린 날의 숨은 추억들을 꼭꼭 밟고 오셨나 봐요.
하이얀 분수를 뿜는 고래 한 마리가 이쪽 골목길 담벼락 위로 치솟아 올라 저쪽 골목길로 쏜살같이 사라져 버렸어요.
골목길이 금새 푸른 바다로 변해 버렸네요.ㅎ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요. 코렐리 시인님! ^^)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통영은 정말 멋들어진 도시이더군요. 통영이 제 고향은 아니구요, 몇년 전에 두번 가 보았습니다.
햇빛이 거의 두통을 일으킬 정도로 강해서 정말 아찔하게 서피랑마을을 올라간 기억이 나네요. 밤에 본 통영의 야경도 좋았구요.
좋은 주말 되십시오.
싣딤나무님의 댓글

혹시 통영 사십니까?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아닙니다. 통영은 두번 가 보았을 뿐이지만, 소박하고 수줍은 도시같아서 마음에 남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