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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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323회 작성일 20-07-12 00:04본문
녹음 안에 들어가
하늘을 바라보고 눕는다.
네 지문이 묻은 유리알들이
투명하고 알 수 없는 빛을 품은 것들이
하늘을 또르르 굴러간다.
귀 기울여보아도
아무 소리 들려오지 않는 허공이지만,
후박나무 잎 얇게 저미고 저미어
살얼음처럼 투명한
표현을 얻으면 되지 뭐.
살을 저미고 저미다가
뼈가 칼 끝에 닿으면,
그곳에서 새하얀 책장들을 넘기며
파도소리 머얼리서 들려오는
익사체의 꿈을 꾸겠어,
포스근히
봄빛에 잔디밭 초록빛이 더
진해지는 소리.
비취와 주금(朱金)을 등에 인
사슴벌레가,
느릿느릿
청록빛과 연록빛 사이를 옮겨다니는 소리.
얼굴에 닿는
후박나무 잎들 무리지어
영원과 부딪치는 조용한 마찰음을
내 얼굴 위에 쏟아붓는다.
나는 이 녹음 아래에서 수많은 시들을 썼지만,
침향(沈香) 시린 어렴풋한
영원(永遠)의 속삭임에 조응하는 것은
지금은 이름 모를
황홀한 후박나무 잎들뿐이었다.
댓글목록
봄빛가득한님의 댓글
봄빛가득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시인님의 시를 그리며 오늘처럼 이상 야릇한 기분이 드는 건 무슨 緣由인지요.
송구하고 외람되지만 詩는 시인에게 指紋이기에, 수선화를 사랑해서 하루에 한번씩 마을로 내려오는, 제가 思慕 하는 분이 있는데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그분의 시어가 저의 관상동맥에 늘 녹아 흐르고 있는데 오늘 올려주신 시를 그리면서 유난히 그분과 시인님이 참 많이 닮았다는 착각을 하게 되네요.
누구에게나 봄은 기쁨과 희망을 서랍 속에 간직하겠지만 저의 봄빛은 어둠 속의 절규입니다. 봄빛에 몸서리치는, 때로는 봄빛을 혐오하면서도 애타게 닮고 싶은, 저의 고백입니다.
평안하시길요. 시인님!
* 오늘 그대에게 내 마음을 대신 할 앙드레가뇽의 Chanson pour liona를 띄워 보냅니다.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런가요? 저는 수선화를 좋아하지 않아서. 제가 좋아하는 것은 우리 어머니께서 어릴 적 산에 혼자 올라가셨을 때 산천에 가득 깔려 있던 그 꽃이라서요. 사실 그 꽃을 필명으로 한 것은 어릴 적부터입니다.
얼마 전 영화 러브레터를 다시 보았는데, 주인공의 고등학교 때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같은 것이 저도 있었음을 기억했습니다. 그래서 통영에 고래가 산다 하고 이 봄이라는 시는 영원에 손이 닿았던 그 아련한 순간을 추억하며 쓴 시입니다.
봄빛이 어둠 속 절규라니 무언가 깊은 사연이 있으신가 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