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훈의 다부원에서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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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378회 작성일 20-07-14 00:06본문
시인이 전장을 밟는다. 한 해 살이 푸나무조차 제 생을 옳게 마치지 못한,
소사(燒死)해 버린 나무의 뼈들이
다 숨기지 못한 직선들인양
포연의 부푼 살점 밖으로 삐져나오는 땅.
시인은 본다.
상반신과 하반신이
광장(廣場)을 사이에 두고 분리된 채
혼자 흐느끼는 남자의 뭉개진 얼굴.
간고등어 냄새로 포개진 채
청록빛 풍선으로 부풀고 있는
검은 작은 고래들.
떨어져나간 모가지를 찾아
기어가다가 힘이 다해
녹아버린 남자도 있구나.
상한 달걀처럼 풀어져버린
남자의 망막에 아직도 포연이 스쳐가고 있을까? 그
어머니의 이름은 자유이러니.
그대는
이 좁은 땅에 자유를 지키기 위해
포연과 쏟아지는 포탄 속을
곁눈질 하나 없이 똑바로 달려갔던 것이다.
작은 풀 포기 하나조차 뿌리를 뻗고
그대와 함께
조금의 거리낌 없이 달려갔구나.
그리고 검붉은 살점과 새햐안 뼛조각들로 파쇄되어
산천에 흩어져 있는 것이다.
이 땅에서
거룩함이란 무엇인가?
그대여. 생명을 치열한 떨림으로
호흡하는 간절함으로
질주해나가는 투쟁으로
간뇌(肝腦) 뭉그러져 비천한 진흙으로
이 장소를 물들였구나.
그대는 보았는가?
그대로 하여 이 땅에 자유가 남았음을.
모든 것을 비워내야 가장 간절함 것이 남는 것임을.
가장 간절한 것을 위해 모든 것을 비워내야
함을.
질주하라.
무릎 꿇지 마라.
입술이 사라져 흰 이가 드러난
그대 얼굴의
검은 구멍이 외치고 있구나.
그대는 죽어서도
끝이 예리하게 날 선
강철로 된 깃발을
내 안에서 휘둘러대고 있구나.
이 성스런 현장에서
시인은 혀를 깨물 뿐
다른 말을 찾지 못한다.
뜨거운 피로 적셔진 펜은
그대로 하여 얻은 숭고한 자유를
드높임으로써 그대를 증언할 것이다.
어찌 달리
돌아나가는 길이 있을까?
흐트러짐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대의 혈육이 물든 깃발 높이 쳐들고
자유를 향해 강철대오로 전진할 것이다.
댓글목록
봄빛가득한님의 댓글
봄빛가득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지난 달인가 6·25 전쟁 70주년을 맞아 국가기록원에서 당시 치열했던 전투상황을 복원한 자료를 본 기억이 있는데,
백마고지 전투를 비롯하여 치열했던 다부리 전투에서만 희생된 분들이 2만5천명~ 3만명 정도 된다고 하네요.
이러한 비극이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잊혀진다는것이 안타까울뿐입니다.
피아를 막론하고 희생된 분들의 안식과 명복을 빕니다.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메세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시는 거의 안 쓰지만, 오늘은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부동전투를 따라가면서 서사시로 써 볼까도 생각했는데, 어떻게 스타일을 잡아야 할지도 가늠이 안되고 시간이 걸려야 가능한 일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