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새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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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5건 조회 428회 작성일 20-09-05 07:46본문
그녀는 높다. 아니,
그녀는 낮지 않다 하고 써야했는지 모른다.
그녀는 가을이라 낙엽빛 표정으로 내장까지 물들어 있을 것이다. 아니,
이미 죽어 태백산맥을 넘어가는 높새바람이
되어있을까? 동해안 험준한 바위가 그녀의
고향이다. 내 어릴 적 배웠던 초등학교 지리 교과서에 그렇게
적혀있었다. 그러면 그녀는 내 유년시절로부터 온
것일까? 그녀가 그 뽀송뽀송한 책장 바깥으로 보여주었던
그 새하얬던 유방도? 그녀는 이미 그때부터
교각이었던가? 페르골라였던가? 보들레르를
읽고있었던가? 보들레르 눈알을 뚫고 포도나무 잎들이 삐져나왔다. 그녀의 숨소리는 숙성되었다. 그녀의 발끝은 타들어갔다. 그녀를 쓰레기 소각장에서
누군가 태웠다. 그녀는 낮지도 높지도 않았다. 그녀는 늘 내 초등학교 지리교과서의 책장을 넘겼다. 나는 그녀의 사진을
벽에 붙은 삼류호러영화 포스터에서 보았다. 그녀는 언제나 내게
죽은 것이 살아있음의 영역으로 넘어오는 중이었다. 새하얗고 긴 종아리들을 꼬았다. 음모(陰毛) 긴 촌충(寸蟲)이 유리접시 위에서 강간 당했다. 어룽거리다 못해 몸부림치는
전등불빛이 그것을 증명하였다. 빠드득 하얀 뼈들이 바스라지며 튀어올랐다. 전등 안에서
청록빛으로 부풀어오른 것이 헐떡거렸다. 그녀는 오늘도
미류나무 예리한 신경을 긁는 헛소리를 코피처럼 쏟는다. 사랑을 사랑답게 사랑하지 못했다는
소리나 한다. 그녀는 오늘도
녹슨 물방울 소리 닮았다. 그녀는 저 까마득히 높은 태백산령을 절뚝이며
위태롭게 내게 온다.
댓글목록
책벌레정민기09님의 댓글
책벌레정민기09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문장의 표현력이 살아 있습니다.
좋은 주말 보내시길 바라며,
시집 《나로도에서》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 보내십시오.
작은미늘barb님의 댓글
작은미늘barb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코레리님 시에서는 왜 가끔 한 소녀가 아픈지 모르겠습니다.
저에게는 이름없는 이름 하나가 늘 아파서 그런지
그런 느낌이 듭니다.
늘 기억나는 아픔인지 그것을 쓰는 것 같습니다.
곡해인지 모르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제가 인생 처음으로 경험했던 아는 이의 죽음이었습니다. 전에 썼던 적도 있을 텐데,
죽음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그 아이입니다.
죽은 방식 또한 참혹했지요.
배탈 정도로 병원에 갔다가 주사를 잘못 맞아 죽었다는데
죽은 후 몸이 청록빛으로 부풀어올랐다고 하더군요. 어린 마음에 그 이야기를 듣고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쓰는 시에서는 죽음에 대한 인식이 그 배후에 있을 때가 있습니다.
죽음에 몇번 아주 가까이 다가가봤기 때문에 그 감각 감촉을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작은미늘barb님의 댓글
작은미늘barb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네~그렇군요 답변 감사합니다.
좋은 작품에 누가 될까 고심끝에 글을 드렸습니다.
감탄이 배어나는 문장들이 눈부십니다.
언제나 잘 보고 감사 드립니다.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