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워온 똥색 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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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차를 타고 오다가 부잣집으로 보이는 대문 앞에 버려져 있던 똥색 소파를 주워왔다 영락없는 똥색이었다 아내는 부끄러워 기겁을 하며 내버려두고 가자 하였으나 나는 막무가내로 차에 실어서는 가져 왔다
요놈의 토실하면서도 푹신한 느낌이
최고다며 나는 앉아 티브이를 보고 책을 읽고
애들 심부름이나 시키면서 하루를 보내었다
똥색 소파의 입장에서 보자면 분명
같은 똥구멍이 아닐 테고 그러니 같은 엉덩이는
더욱 아닐 것이고 같은 사람이 아닐 것이다
나의 입장에서 보자면 남의 똥 내음 나는
소파에다가 나의 똥 냄새를 섞은 것이니
조금 쑥스럽기도 하다만,
참으로 평화로워라 세월이여
시(詩)처럼 흐르는 가난한 저녁이여
역사 이래 똥이 부끄러운 시대가 있었던가
아님 반성 없는 삶이 부끄러운 것인가
가족의 똥 냄새 묻은 팬티들이 서로의 살결을
섞어가며 세탁기 안을 돌고 있지 않았던가
나와 남의 똥 내음 섞인 소파에 앉아
잘생긴 시인 백석을 읽는 저녁
똥이 거름이 되고 사색(思索)이 되고 별빛이 되고,
성욕 없이 아름다운 여인을 볼 수 있는 저녁
아름다움을 어떤 사욕도 없이
가질 수 있는,
[이 게시물은 창작시운영자님에 의해 2019-07-12 12:00:54 창작시의 향기에서 복사 됨]
댓글목록
꽃핀그리운섬님의 댓글

작은 것 하나에도 기뻐할 줄 아는 어린 아이의 순수성이 사라진 지금 현 시대를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너덜길님의 댓글

누구신가 하고 님의 시들을 찾아 읽어 보았습니다.
위 댓글의 따사로운 마음이 투시된 글들이더군요.
좋은 마음은 좋은 마음과 잇닿는 법,
힘을 내어 별을 바라보는 저녁입니다.
부엌방님의 댓글

저는 20년전에
쓰레기 더미에서
주어왔는데 쓸만한
비닐 소파
10년 테이프 붙여가며
쓰다가 무너져 버렸지요
그속에서 두아이가 얼마나
좋아서 뛰어 놀았는지
시 읽다가 눈물 났네요
똥 같아도 담날 다 잊혀 지더라구요
천상병 시인의 느낌 받았네요
그냥지나 칠수 없었어요
이해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너덜길님의 댓글

삶이란게 뭐 별 거 있나요,
낡은 것이 새 것이 되는 이 맛,
새 것이라도 감흥 없이 보내어 버린다면
낡은 것이 되어 버리니,
이러한 원리를 놓치지 않는 것에
시를 쓰는 자세가 판가름 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