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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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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643회 작성일 19-06-14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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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형아



열 대여섯 가구가 종이 상자처럼 더덕더덕 붙어 있던 고기동
방 한 칸에 다섯 가족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며 살아가던 고기동
어린 시절 그곳엔 내 친구가 하나 있었지
한적한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던 나보다 열 살이나 나이가 많았던 바보 형아
공사장에 있던 나무로 칼을 만들어 전쟁 놀이, 연탄재 던지기 싸움하며 동네 야산에서 해가 지도록 함께 놀았던 바보 형아
찌그러진 입술가로 침물이 시나브로 흐르던 바보 형아
흐리멍텅하면서 슬픈 눈빛을 가졌던 바보 형아
손이 꺽이고 얽어 물건을 제대로 쥐기 힘들었던 바보 형아
말을 만들 수 없던 혀로 온갖 말을 하려던 바보 형아
동생아 동생아 하며 우리집 문밖에서 동네 사람들 짜증나도록 목놓아 내 이름을 부르던 바보 형아
하루는 퉁퉁 부은 얼굴로 나타나선 왠지 달래어 달라는 눈빛으로 내 손을 잡았던 바보 형아
글을 모르고 어려운 말을 몰랐던 바보 형아
그렇지만 나와는 무엇이든지 통하던 바보 형아
내 동생이 미나리꽝 얼음판 위에서 썰매를 지치다가 구멍에 빠졌단 소릴 듣고 가슴 쿵쾅거렸을 때도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달려왔던 바보 형아
어디선가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나타났던 마징가 제트, 짱가, 로보트 태권브이 같았던 바보 형아
어느 겨울날인가 가족과 함께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졌던, 그래서 어스름녘 노을 같았던 바보 형아
고기동을 떠나간 후에도 한번씩 내 가슴에 들러 한참을 쭈그리고 앉았다가 쓸쓸히 되돌아가던 바보 형아
형아야, 먼저 하늘로 떠났다는 소식을 소문으로 들었어
우리 유년의 그늘진 고기동 좁은 골목길에 지금도 슬픈 눈망울로 서 있을 것 같은 우리 바보 형아야

[이 게시물은 창작시운영자님에 의해 2019-06-17 08:55:37 창작시의 향기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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