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향기 여기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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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가다가 눈 앞에 떠오른 단풍잎들 새빨간 감촉마다
아 그 향기 여기 있었네!
눈 앞에 바로 두고도 오래 잊었던 그 파도가
여기 있었네!
세상 느슨한 것들을 단도리질하는
엄격한 미소, 검은 바다 향해 혼자 걸어가던 그 간절함이
여기 있었네!
눈앞에 시집으로 펼쳐진 가을아침 무심히 읽다가
손끝을 베는 책장 모서리, 따끔! 고요히 모여드는 핏방울 아,
그 향기 여기 있었네!
오래 잊었어도 그 향기 바래지 않다가
다시 찾아와주어 고맙다.
장항 바닷가 저 멀리
모래톱에 걸려 있는 폐선은,
뻥 뚫린 옆구리에 해당화며 미친 두루미꽃 활짝 꽂고서
아직도 빛나는 꿈 꾸고 있겠지.
그래, 이 향기 딱 한번 맡았기에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것이다. 산머루든 비단거미든
거미줄 촘촘히 짜여진 무릎 위에 불러모아,
다림질한 언어 속에 쓸쓸한 견고함 여러 형태를 얻어
흔들릴 수 없는 그 지독한 절조 있는 향기!
한없이 부풀어오르는
너의 손가락은 부지런히
무언가 황홀한 것을 계속 자아내고 있구나.
아 그 향기 여기 있었네!
달팽이가 버리고 간 무지개빛깔 껍질
속이 텅 비어 있어
세월이 가리키는 방향을
그저 따라 돌아가는 풍향계처럼,
하지만 내 후각세포는
이 만화경같은 화강암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구나.
아무리 코 박고 깊이 들이마셔보아도
아 그 향기 여기 있었네!
서늘한 옥빛 목숨의 변주 속에 폐선 하나 갈망하여
또렷이 그 자태만은
내 코끝으로 달콤하게
폐 속을 비수로 후비듯 얼얼하게
아 그 향기 여기 있었네!
댓글목록
꿈길따라님의 댓글

그 향기에 슬은 맘속 향기로
예전에 에코팍에서 느껴본 향그럼
마음에 슬어 쓴 시 한 수 제가 늘
싣고가던 곳에 옮기며 이곳에
시 한 송이 실어 놓고 갑니다.
자운영꽃부리님의 댓글의 댓글

그제 눈 많이 왔을 때 쓴 시인데 올려보았습니다. 참 많은 것들이 마음을 격동시키며 쫓아와서 그때 쓴 시들이 모두 감정적인 글들이 되었네요.
꿈길따라님의 댓글

시 한 송이 피우렵니다/은파 오애숙
어찌 이리 아름다운지
흙탕물 속에서도 고고한
자태에서 풍기는 아름다움
무엇하고 비교할 수있으랴
어찌 그럴 수 있는 것인지
꽃이 지면 핍진 그 자리마다
열매 맺어가고 있는 것이련만
꽃과 함께 맺어 가는 구려
세상사에 살면서 향그런 꽃
활짝 피우며 열매 맺어가길
두 손 모으는 마음속의 바람
욕심이 아니고 진실 됨이라
어찌 네 모습 아름다운지
이 아침 숭숭 뚫린 연밥 속에
시어 공명시켜 날개치는 향기
맘에 슬어 한 송이 시 피우네
자운영꽃부리님의 댓글의 댓글

하나의 시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아름답게 묘사한 시네요. 역시 시를 많이 쓰신 분이라서 생생하게 묘사가 와 닿는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꿈길따라님의 댓글

이곳은 가을 같지 않은 가을인데
그곳은 겨울 길섶이라 싶습니다
자운영꽃부리님의 댓글의 댓글

여기도 그리 춥지는 않습니다. 올겨울은 한파가 심하다고 했는데. 집앞에 장미가 다 피어있네요.
꿈길따라님의 댓글

저도 언제인가 한겨울 이곳에서
아파트 단지에 흰장미 한 송이가
핀 것 봤습니다. 그 당시 바람이
세차서 그랬는지 안쓰러웠던 기억...
한국에도 초겨울 장미가 필 정도면
아마도 엘리뇨 현상 때문 아닐까요?
많이 심각한 상태라 싶은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