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한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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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터 일던 바람이었다.
오늘은 미루나무 침잠한 그늘 아래 머문다.
하늘빛은 후박나무 잎새로 태어나고 칸나꽃은 그늘에서 새빨갛고 가는 긴 빨랫줄에 널린 옷들이 팽팽한 품안에 햇볕을 누이며 담장 위 작은 포도알들 멍자욱이 선명하다.
쏟아지는 여름비에 안겨 누이를 그늘로 옮긴 한 때가 있었다. 뜨거운 빗줄기에 달아오른 파초잎처럼 누이가 느껴지던 적 있었다. 폐에 물이 차서 폐속에 가라앉은 폐선이 무겁게 호흡에 걸린 때가 있었다. 바위를 품에 안고 혼자 울던 누이를 본 적 있었다.
누이가 멀리 편백나무며 송로나무 우거진 산등성이 지나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 따라 떠메여갔을 때 오직 달빛만 푸른 구름에 휩싸여 쫄래쫄래 그를 따라갔었다. 흔들흔들 고운 상여 산을 울리던 방울소리 멀어지듯 멀어지듯 발로 땅을 다지며 내 마음에 멎은 적 없었다.
여름비 그친 지 오래다. 젖었던 풀이 싱싱하게 다시 일어선다. 어느 먼 바다가 달빛 번진 누이를 품고 있나. 그 바다에 가고 싶다.
댓글목록
김태운님의 댓글

여름비 그친 지 오래다. 젖었던 풀이 싱싱하게 다시 일어선다. 어느 먼 바다가 달빛 번진 누이를 품고 있나. 그 바다에 가고 싶다///
어제부터 줄곧 불어오는 바람 따라...
쨍쨍해진 볕살이 바다의 물살을 물어뜯던 날
전생의 오라비를 품고
ㅎㅎ
감사합니다
자운영꽃부리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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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신님의 댓글

엮어가는 진술이 오랜 습작을 대변합니다
요즘, 창방에 밝은 불을 켜 주십니다
자운영꽃부리님의 댓글의 댓글

감사합니다. 최정신님 시 잘 읽고 있습니다.
제 시를 좋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시들이 많은데 제 시가 창방에 밝은 불이 될 정도는 감히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하라고 하시는 말씀으로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