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백이 /추영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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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백이 /추영탑
배경이 지워지고 기억이 가물거리는
장승백이에 장승은 없고 소주방은 있다,
사라진 장승들이
소주방 구석지에 앉아서
젊은이들에게 주도를 가르친다
옛 사람들도 장승을 옆에 두고 술을 마셨을까
지난 천 년이 꼬리를 자르기 훨씬 전에, 남의 눈에는
미쳤으나 저 혼자는 제정신인 술래가
쪽문을 기웃거리면
술은 안 주고 밥만 한 주먹 건네주던
서울 집 김양은 시집간다는 말을 장승백이에
뿌리고는 새 천 년 속으로 사라졌는데
지난 천년의 추억에 묻혀, 새 천년을 파먹고 있을까?
정미소 없어진 자리에 술래꽃이 피었다
장승백이 술집마다 드문드문
시들 시들 피어있던 꽃들
그 많은 술잔을 들고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진 그림자 서성이는 자리,
낯선 사람들이 채웠는데
목로집, 선술집, 왕대포집 사라진 곳에는
소주방 간판이 장승처럼 서있다
[이 게시물은 창작시운영자님에 의해 2018-07-20 15:41:32 창작의 향기에서 복사 됨]
댓글목록
꿈길따라님의 댓글

장승백이 수십년
왔다 갔다 했던 곳입니다.
다녀와서 감상할게요~
추영탑님의 댓글의 댓글

태평양 건너기 힘드시면 일본에서
섬 몇 개 젓가락으로 집어다 징검돌 놓으십시요. ㅎㅎ
건너기 훨씬 수월하실 겁니다. 금문교에서 동해 바다
울릉도가 금방일 겁니다. ㅋ *^^
꿈길따라님의 댓글

샌프란시스코 까지 갔으면서 금문교를 못 가 정말 서운했네요. 모두 다 지쳐 넋 다운!
[추영탑]시인님은 유머와 위트가 있으셔서 재미 있네요. 일본을 안 거쳐도 시창으로
바로 연결 할 수 있어 다행인데 잘 안 열릴 때가 있답니다. 미국은 인터넷이 조금 느려요.
어제 이웃집 할머니 소식을 받아 아버지 댁에서 어제 잠자고 매니저를 만나
교회 목사님께 연락하여 병원을 수소문하여 다녀오느라고 조금 정신이 없었네요
사실 너무 신경 썼더니 앞 머리와 뒤 부분의 목 줄기가 뻣뻣해져 정신 줄까지 놓을 정도..
이제 아이들과 함께 집으로 하산하여 저녁 식사하고 [시창]을 엽니다.
정말 정신이 몽롱한 하루였네요. 이러다 제가 먼저 쓰러질 것 같습니다.
장승백이는 중학교 3년 동안 그 곳에 내려 학교 갔던 곳이라 새삼 학창시절 그립게 옵니다.
그 시절 친구들과 함께 늘 도서실에서 늦도록 책 읽었던 기억이고 함께 걸어가면서 중간 중간
책 읽은 것을 서로 이야기 했던 기억도 새롭게 떠 오릅니다. 한 친구는 아마도 이세상 사람이
아니라 싶기도 하고... 백혈병인지 기억은 나지 않는데 그 당시에도 아파서 학교를 쉬고 병원에
입원했던 기억입니다. 이름은 기억 나지 않지만 얼굴이 서구 적이고 얼굴이 하얗던 기억이라...
그러고 보니 친구 중 백혈병으로 세상 떠난 이들이 몇 사람 됩니다. 20살이 안되어 세상 떠났네요.
나온 순서는 있지만 가는 순서 없다고... 지난날 어제 같은 순간인데 벌써 40년 여 년이 흘렀네요.
10년 후 저도 살아 있을지 모르나 10년 후 오늘이 어제같이 느끼겠지요. 시인님은 젊어 이런 감정
잘 모를 거라 싶지만 아무튼 삶이란 살아 있어야 사는 거지 오늘 멀쩡해도 내일은 누구도 모르거든요...
추영탑님의 댓글

ㅎㅎ 그리 고생을 하시고도 이리 장문의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물을 세 바가지 마셨습니다.
아무래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 댓 바가지는 소비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일본 넘들이 못된 짓을 했으니,
일본의 섬을 집어다 태평양에 징검다리를 놓는 것이 제 평생의 소원입니다. ㅎㅎ
제주도 옆에도 혹가이도를 집어다 놓으면 좋을 듯도 싶고요.
젊어서 죽은 친구가 몇 된다니 참, 서운하시겠습니다.
매니저까지 두셨다니 아무래도 큰 일을 하시는 분 같습니다.
참, 장승백이는 이곳 나주에 있는 지명입니다.동네 이름요.
지금은 술집보다는 타 업종이 많이 생겼지만 옛날에는 타 업종보다는 술집이
술집이 더 많았지요.
저도 생애의 열흘쯤은 그 곳에 팽개치지 않았나 싶습니다. ㅋ
술래라는 미친 여자도 있었고요.
추억이 많은 어린시절의 동네입니다.
지금도 장승백이라고 부릅니다.
어제 고생하셨으면 오늘은 쉬셔야지요. 충전이 필요합니다.
감사합니다. 오애숙 시인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