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5] 겉장을 가진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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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장을 가진 슬픔
우연히 손에 쥔 죽은 이의 일기를 읽는
캄캄하거나 훤한 전생 같은 저녁
붉은 포도주가 이끄는
가벼운 기분과 약간의 우울감으로
때가 돼도 오지 않는 종말 같은 시간을 괴로워한다
견딜 수 없는 슬픔 같은 것들은 왜 생겨날까?
마음에 소용돌이가 일고 감각들은 잠시 정지되어
공허해진 몸통 속에서
울리듯 아주 작은 느낌으로
하나의 질문이 떠오를 때
인간이라는 고통과
외로움은 나누어지는 것이 아님을 생각한다
오래된 기도문의 검은 문장들은
어둠 속에서
불도 켜지 않은 채
거실에 홀로 오랫동안 앉아 있는 사람을 배회한다
그는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채로 잠이 든다
위층에서 누군가 거칠게 방 문짝을 닫는다, 그리고
날카롭게 들려오는 악다구니들
저렇게 문을 세게 닫으면 누가 아플까?
소리는 이럴 때 화약이 잔뜩 들어간 폭탄 같다
잠 속에서 길 떠날 채비를 서두르고 있던 그는,
잠깐 물체와 감정들의 뒤섞인 소음에 주의를 기울여 본다
그의 여행가방 안으로 겉장을 가진 슬픔이 한 권 놓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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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오영록님의 댓글

좋은 시 잘 감상하였습니다.
최우수상 축하도 드리구요..
물체와 감정들이 뒤섞인 소음 와우
시제도 독보적이네요..
香湖김진수님의 댓글

마지막 연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네요
속은 어떨지?
서피랑님의 댓글

조곤조곤 사유를 이어가는.
서술이 일품이네요
잘 감상했습니다.
그믐밤님의 댓글

오영록, 김진수, 서피랑 세 분 시인님의 축하 말씀이랑 감상평 모두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시는 제게 고단한 일상의 숨막힐 것 같은 범속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순간들의 기록이며,
어떤 특별한 의식의 진술입니다. 이 무모한 수고에 쳐주신 박수, 너무 고맙습니다~
세 분 모두 건승, 건필하시길 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