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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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길 저녁을 밝히는 가로등 불빛을 보면 나는 시를 떠올렸다
어두운 골목 한편에 작은 집을 짓고 살아가는 그 빛을 보면
지금도 시린 겨울 손발에 끼고 살아가는 소시민의 삶을 떠올렸고
비좁은 불빛 가운데 스포트라이트를 꿈꾸며 하루를 살아가는
가난한 배우를 그리워했었다.
널 만나기 전에는 그랬다.
오늘 밤 그때 그 골목을 지나다 본 가로등 불빛은
한입 가득 어둠을 베어 문 포식자였다
달빛의 함정에 빠져 옆구리를 뜯어 먹힌 가여운 짐승이었다
부는 바람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신음소리로 들렸다.
나의 시는 죽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던 시인을 꿈꾸던 어린 소년은
이제 날아가는 새들이 하늘을 가리는 검은 연기로 보인다
칼끝처럼 솟아오른 건물들이 두려워 거리를 피한다
너는 저 낡은 가로등 불빛 속에 산다
내 영혼을 집어삼키려는 듯 밤만 되면 찾아와 나를 물어뜯는다
사랑은 노래하지 않으려 했던 마음마저 무너져
나는 지금 너를 노래한다
물어뜯긴 몸을 부여잡고 한 줄씩 써내려간다
[이 게시물은 창작시운영자님에 의해 2018-02-23 15:53:43 창작의 향기에서 복사 됨]댓글목록
터모일님의 댓글

"너는 저 낡은 가로등 불빛 속에 산다"
이 구절은 정말 오래된 가치의 고전에서나 찾을 법한 표현이군요.
너무 마음에 들어서 잠시 그 불빛 속에 들어가 서성이고 싶기까지 하네요.
잘 보고 갑니다.
아, 그리고, 회고체로 쓰셨는데 현재의 자아는 과거의 자신에 대한 향수나
2인칭 "너"라는 거리감으로써 표현하셨는데, 제 주관이 맞다면, 시간적 대비는
정통성이라고 말해도 될까요?
무례하지 않다면 정통적 갈래의 어느 양식쯤이라고 보여집니다.
물론 회고라는 점에서 좋았다는 뜻이지요.
museum님의 댓글

좋은 평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한 시에 이렇게 댓글까지..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