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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23회 작성일 17-06-25 22:25

본문

보도 블럭 위에 떨어진 새의 깃털을 주웠다

까마귀의 깃털인지, 까치의 깃털인지

까마귀, 까치, 까마귀, 까치, 하며 아카시아 잎처럼

한 낱 한 낱 깃털을 떼어 볼 시간도 있는

백수의 손은 호주머니의 근위 같아서

깃털은 내가 잠들 때까지 미지근한 수축과 이완에 시달릴 것이 분명하다.

뾰족한 깃뿌리에 빈틈 없이 살갗이 뚫리고서야 온기를 얻는 새의 알몸은 언제나 소름이 끼쳐 있다

소나기가 지나간 맥문동 화단에서 뜨거운 물에 데쳐진 닭털 냄새를 맡으며

엄지 손가락으로 새털의 매끈하고 부드러운 결을 따라간다

손가락 중에 엄지만 촉감을 느끼는 것일까?

옷감의 재질을 만질 때 검지는 받들기만 하고 엄지는 판단을 하는 것 같다

노래방 도우미의 허벅지를 더듬던 택시 회사 사장의 손바닥도 네 손가락을

엄지의 수행원처럼 내버려두고 엄지만 오락가락 부렸다.

그래서 누군가를 추켜 세울 때 엄지를 척 들며 다른 손가락들은

무릎을 꿇리는 것 같다

그러고보면 나는 척 들린 엄지와 동일시 되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검지가  나를 지목했고

중지가 자지처럼 일어서며 나를 향했고

결혼 반지를 빼고는 약지처럼 무의미 해졌고

바람끼 많은 유부녀의 애인이 되며 새끼 손가락과 내가 같은 처지가 되었다

펜대를 잡거나, 삽자루를 잡거나

엄지와 같은 의미가 되어 본 적이 없는 나는 늘 불안해 보였다

엄지가 나서지 않아도 재미를 보는 일은 수음 뿐이였다

까치, 까마귀, 까치, 까마귀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 이고요,

까마귀가 나르는 밀밭은 불길했다.

견우와 직녀가 만났던 오작교는 까마귀와 까치가 같이

머리를 맞대었고

전설의 고향에서는 웬만하면 까마귀가 울었다.

길흉을 더듬는 엄지가 돌팔이 점쟁이의 머릿속처럼 오락가락 하고

어느쪽이든 딪고 보는 발은 정처가 없다

가려운 곳을 긁을 때도 가담하지 않는 엄지가

압정을 박을 때 홀로 활약하며 세상을 가로지른 벽마다

오늘의 숙제와 명언과 격언과 말씀들을 못 박았다

왜 새들은 잃어버린 깃털을 찾아 헤매다니지 않는걸까?

없어도 그만인 것들을 뒤집어 쓰고 고공의 한풍을 건너다닌 것일까?

그래서 중들은 머리를 깍는 것일까?

빠진 새의 깃털에 부리를 박고 압사 당한 나무를 쪼면 새 소리가 들릴까?

슬그머니 새를 빠져 나와 고해실을 찾듯 공중을 두리번 거리다

길바닥에 쓰러져 잠든 술주정뱅이를 깨운다

까치, 까마귀 까치 까마귀

죽은 까치와 까마귀가 떨어진 오작교 아래처럼 수북한 아카시아 잎들,

 

 

 

 

 

 

 

 

[이 게시물은 창작시운영자님에 의해 2017-07-03 11:50:21 창작시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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