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15> 외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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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가 일기>
댄에서 몸이 꽁꽁 언 동치미를 퍼오던 외할머니는 동지 지
나면 해가 입쌀 반 잔등만큼씩 길어진다고 했다. 방구석을
빈둥거리는 말라비틀어진 밥알을 보곤 긴 겨울 볼 따귀가
트도록 들녘을 쏘다녔다.
외할머니 입쌀은 앞산 복지깨 잔등만 한 것인지 방학은 짧
았다. 개학을 코앞으로 두고서야 부랴부랴 숙제하는데 꿈
많은 어린이를 조합 빚 같은 숙제로 힘들게 해도 되는지
잠은 쏟아지고 문풍지는 끙끙 앓는 소리를 했다.
짐승처럼 두들겨 맞을까 봐 때리는 과목만 겨우 하고 눈을
뜨자 어느새 다가온 저녁 같은 아침. 아무도 없는 집을 나
서 책가방에 짓눌린 채 논배미 길을 걷노라니 밥 짓는 연기
가 집집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침부터 잔뜩 취한 형구 아버지가 어딜 가냐고 묻기에 개
학이라고 하자 지금은 저녁이라고 마구 웃었다. 뜻밖에 마
음의 평화가 찾아왔지만, 사람이 쪽팔리면 키가 한 뼘은
훌쩍 자란다는 걸 그때 알게 되었다.
댓글목록
고나plm님의 댓글

준비된 시 같습니다
베를 짜듯 잘 직조되어 펼친 삼베 시 같습니다
틈틈한 시어 군데군데 수를 놓으시기도 하셨고
암튼 그 감, 잘 만져보고 갑니다
김거명님의 댓글의 댓글

일기도 시라고 빡빡 우기며 용기내어 올려봤는데요.
한 두 군데 고치려고 왔더니 신나는 격려를 주시네요.
고맙습니다. 꾸벅......
책벌레09님의 댓글의 댓글

네, 일기로 시를 습작하는 건 좋은 시도입니다.
일기는 하루 일과 중에서 한 가지를 쓰는 것이지요.
'시'도 마찬가지로 묘사하는 겁니다.
단, 단순한 묘사만이 아닌 고정관념을 깨야 합니다.
비를 그냥 비로 보시지 마시고, 국숫발로 보십시오!
김거명님의 댓글의 댓글

그렇군요. 비는 국수발이라서 대지는 금세 돼지가 되겠군요.
떡잎도 국수가 먹고 싶어 양손을 벌리는 거군요.
비는 바닷물의 증류라던데 멸치, 상어, 고래, 새우, 참치가
헤엄치던 육수는 아주 진해서 생명이 쑥쑥 자라나 봅니다.
국수는 잘 하고 있는데 국수주의는 왜 그리 답답한지,
유쾌한 비유에 활짝 웃어봅니다.
책벌레09님의 댓글

학창 시절이 그립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김거명님의 댓글의 댓글

책벌레09님 반갑습니당.
매 맞으며 공부하던 학창 시절은 싫지만
다시 돌아가고는 싶습니다.
할모니 만나면 이젠 속 안 썩여드릴 껀데...
할모니가 보고 싶네요. 응앙응앙
쇄사님의 댓글

두들겨 맞는 과목도 안 하고 잤다가
기겁을 했는데
다행히
아침 같은 저녁이어서 다시 잤다가
요즘 노가다판에 있습니다.
욜심히 쓰세용
'입쌀 반 잔등'은 뭔가요?
김거명님의 댓글의 댓글

입쌀 반 잔등=흰쌀 한 톨의 절반 크기를 말합니다
-김거명 외조모의 은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