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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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균
민달팽이처럼 살았네. 다 벗어버린 채
왔다가 왔다고도 못한 채 그 곁에 흔적만 내려놓았을 뿐
태양의 각박한 호흡과 바람의 살벌함 속에서 다 벗겨져 버린 채
그 중심 밖에서 어쩌다 물끄러미 바라볼 뿐인 방관자였었네
시간조차 모래알처럼 산산이 부서져 버리는 무법천지에서
청량한 호흡조차 아득한 사의 거울 속 같던 그 날들
이 알량한 알몸마저 다 지우려 드네
365일이 전부 지워져 버린 그 벽엔 더는 몸 의탁할 날짜는 없었네
벽 아랜 다 타서 버려진 무명의 초들이 촛농에 스스로 몸을 묻네
맨 앞에서 각을 세우며 빛을 발하던 외침들을 위로함인 듯
밤하늘엔 별들이 촛불처럼 눈을 뜨네
저들의 염원은 어디에 있는가
혹독한 바람은 나약한 빛들의 좌절을 자극하며
한 줌 오기마저 접게 하네
바람의 등에라도 제 몸 의탁해야 할 지경이어서
허기엔 언 몸으로 혹한의 갈기라도 베어 먹어야 했네
하지만, 풍전등화의 처지에서도 눈 밝은 촛불들은 빛을 발하네
진리는 거룩하다며
저들을 응원하는 건 세상 험한 꼴 다 덮어버린 백옥의 설원뿐이네
촛농 속에 묻혀버린 무명의 초들
보신각 타종과 함께 다시 신념으로 되살아나 일어서네
혹한을 지우며 밝아오는 새날
어둠에서 밝으므로 밝음에서 한층 더 환함으로
희망의 새해, 우리는 모두 도약을 꿈꾸네
또다시 일출과 일몰을 반복하며 빛을 세우기 위해
일출은 동쪽 하늘에 붉네
자빠지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는 민달팽이
일보일배의 성찰은 새벽 새 벽에 새날의 새 달력을 또 내거네
끝끝내 이룩할 내일을 위하여
댓글목록
고나plm님의 댓글

꾹꾹 눌러쓴 다짐의 시,
참, 헐겁지 않다는 생각에
알차다는 생각에
낱낱이 읽어보고 가옵니다
읽고난 내 어딘가도 다짐이 필요한 구석 있어
고마운 마음으로 가옵니다
새해 복 많이 그리고 문운 기원합니다
이포님의 댓글의 댓글

네! 감사합니다.
지난해는 변고가 너무 많아 정신이 없었습니다.
새해에는 차분하게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작심삼일이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새해 건강하시고 좋은 글 많이 쓰세요.
복도 많이 받으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