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9 > 연장의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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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장의 공식
무쇠들, 화덕 앞에 몰려 있다
강한 것 같지만 연하고 푸르스름한 살을 가지고 있는 쇠
잘 벼린 낫날은 무쇠의 가장 깊은 살이다
뼈가 살을 베는 것은 본 적 없으나
살은 살을 벨 수 있는 것
투박한 모루에 불꽃으로 상기되는 소리들이 박혀 있다
연약한 속을 끄집어내는 불꽃과
두드릴수록 가늘어지는 비명들
펄펄 끓는 불의 의중에 따라 길들여진 것이
연장의 모양이라면
불꽃은 가늘고 긴 계절을 불러내는 혀다
불의 뼈를 두드리는 사내가 있다. 창을 열면 가까이 와 있는 국적 없는 별들, 낮 동안 쏘아올린 불꽃 중 어느 하나는 아주 먼 곳까지 튀었을 것 같다
자루하나 끼우면
끼니가 되거나 공사가 되기도 하는 쇠의 근성
쟁기질을 하는 사람과 칼을 휘두르는 사람은 모두
뜨거운 손잡이를 쥐고 있는 것이다
쇠를 펴는 기법은 불의 변형에 있듯
검은 빛을 다 버린 다음에야
다시 번쩍거리는 연장의 공식
날아가지 않고 부리로 들어가서
뼈가 되는 불꽃들
어린 새 한마리가 푸른 불꽃 속에서 파닥거린다
[이 게시물은 시마을동인님에 의해 2016-10-17 07:17:01 창작시에서 복사 됨]
댓글목록
책벌레09님의 댓글

아래 시도 좋지만, 이 시 역시, 좋네요.
이미지 이벤트에 오르고도 남을 작품입니다.
제 생각이지만, 아무튼 이 시 선정될 듯합니다.
좋은 시간 되세요.
이면수화님의 댓글

깊고 오묘한 사유를 풀어내는 한 마디 한마디가 불꽃처럼 피어오르는...
장인의 유장하고 그윽한 가락에 뭉클뭉클 취합니다. 그 뜨거운 손잡이...
밤새 뒤척일 것 같아 독주 한 잔 마시고 자야겠네요. 잘 읽고 갑니다.
민낯님의 댓글

시가 참 좋습니다.
오랜만에 멋진 시를 발견합니다.
멋진시 자주 보여주세요.
활연님의 댓글

쇠를 다루었는데 부드럽기 그지없네요.
시엘06님의 댓글

연장에서 생성과 소멸의 하모니를 꿰뚫어 보는 힘.
풍성하고 맑은 가을 나날 이어지시기 바랍니다. ^^
현탁님의 댓글

이렇게 부드럽게............
할 말 다하는
여러번 읽습니다 감사
동피랑님의 댓글

삼각함수 공식보다 더 신기하네요.
저 딱딱한 쇳덩이를 주물러 탕국을 끓이셨네요.
간도 맞고 맛도 좋은 시!
성영희.님의 댓글

책벌레님
이면수화님
민낯님
활연님
시엘님
현탁님
동피랑님
넘치는 말씀 말씀들 고맙습니다...
아름다운 가을 만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