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이벤트> 목이 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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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탈 때
이영균
찻잎을 오래 문지르니 짙은 갈색 녹차가 되었다
아홉 번 불에 굽고 문지르기 전엔 그냥 푸른 풀빛 초봄이었는데
아홉 달 타들어 가는 갈망 끝에는 곤하여 숲도 저리 붉었다
추락하는 폭포의 울음 위안 삼아 물빛에라도 푸르라고 울음 그쳐 가는데
풀빛은 무심히도 말라만 가기에 그 계절에 초연히 서서 울음 그치기를 기다린다
그런 난 낙엽이었으므로 단풍 곁에 물들고 삭아서 흙이 되면 또
봄엔 푸르러 가지에 움도 되고, 껍질도 되고, 뿌리에 명줄이 될 것이다
여름날 비에 흠뻑 젖다 보면 푸른 가지 끝엔 꽃도 피고
시월쯤 열매 되어 바라암 바라암 바라만 보던 고갯길에서
마른 손 흔들다가 붉게 물드는 그 숲에 또 삭아질 것이다
가슴이 가을빛으로 꽉 찼으니 이제 그 빛에 서서히 물들기만 하면
나의 생도 이제 곧 가을이겠다
기러기 너울너울 느리게 내려앉을 때 놀라서 터져 쏟아지는
콩깎투리 속 콩알처럼 누구의 손엔가 가실 될
난 가알 이겠다
[이 게시물은 시마을동인님에 의해 2016-10-28 10:32:33 창작시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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