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15】억새밭을 지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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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시마을동인님에 의해 2016-09-09 11:29:03 창작시에서 복사 됨]억새밭을 지나며
상갓집
구름 만장 흔들러 가는 바람아
백야를 물어다가
빈 들녘에 뿌리려 솟구치는 자들아
이 무릎을
새들의 이마를 딛고 가라
선술집에 홀로 앉아 야윈 어깨 들썩거림도 없이 저 혼자 깊어지는 우물에 두레박을 빠트리고 맥쩍게 웃는 자의 어깨뼈를
바람 관절 불거진
모퉁이를 돌아야 비로소 환해지는 언덕을 밟고 가라
강물을 향해 곤두박질치는
저물녘 이르는 먼 길아
그림자 끌어와 뉘고 빈 바랑을 빠져나가는 누런 바람아
어느 때에라도 곡적을 놓친 벼랑은 있다
가슴뼈 휜 동굴로 녹슨 물감을 던지는
캄캄한 계절들아
울창하게 쓸리던 맹세의 숲들아
억장으로 무너지던 실패한 습작들아
자투리도 끄트머리도 없이
흐느끼다 저물던 사랑아 그러므로
누르고 가라
댓글목록
활연님의 댓글

광장
박준
빛 하나 들여보내는 창(窓)이면 좋았다 우리는, 같이 살
아야 같이 죽을 수도 있다는 간단한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시
절에 만났다 네가 피우다 만 담배는 달고 방에 불이 들아오기
시작하면 긴 다리를 베고 누워 국 멸치처럼 끓다가 '사람이
새와 함께 사는 법은 새장에 새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마당
에 풀과 나무를 키우는 일이었다' 정도의 글귀를 생각해 너
의 무릎에 밀어넣어두고 잠드는 날도 많았다 이불은 개지
도 않고 미안한 표정으로 마주앉아 지난 꿈 얘기를 하던 어
느 아침에는 옥상에 널어놓은 흰 빨래들이 밤새 별빛을 먹
어 노랗게 말랐다
`
고현로2님의 댓글

역시 활연님 시는 꽉차는 느낌입니다.
저는 괜히 쥐뿔도 없으면서 있는 척 숨어봤는데요.
쥐구멍에서 나오는 날 뽕 망치로 쾅 때리시는 듯^^
건강하시고 잘 지내시죠?
억장으로 무너지던 실패한 습작들아라고 하시는 것 보면 여전히 킹왕짱이시라는...
활연님의 댓글

오랜만에 뵙는 듯.
나도 안 나타나면 괜한 성화가 있고, 나타나면 시들한 증상을 여전히 겪고 있지요.
나는 뭐 고루하다! 그렇지만, 요즘
열공합니다, 시를 생각할 여력이 없어 오히려 좋아요.
잘 계신지? 시를 열정으로 사랑하는 청년!
같아요.
오늘은 적당한 취기, 한숨 자고 작은 등불을 밝혀야겠습니다.
오시니 역시, 환하다,
거짓 없는 바로 그 추구, 그 안에 시가 있으리라 믿어요.
맑은 정신에 다시!
안희선님의 댓글

흔히, 시에서 동원되는 범상하고 일상적인 현재 (이를테면, 제 졸시에서 많이 보여지는 것 같은)
혹은 소재라 할까.. 아무튼, 그러한 것들마저도 현재의 자신을 뛰어넘으려는 그 어떤 지향 志向으로
변환함은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항상 견지해야 할 자세인 거 같습니다
오늘 올려주신 시에서도 그 같은 면모를 보여주시네요
저 같은 경우는 쓰다가 맘에 안 차면 그냥, 버리는데요
(이건 쉽게 시를 쓰는 사람들의 공통된 습성일듯)
반면에 실패에 몰입되는 차원까지도 밀도 있는 언어로
형상화 하여 시가 되고 있음은..
" 가슴뼈 휜 동굴로 녹슨 물감을 던지는
캄캄한 계절들아
울창하게 쓸리던 맹세의 숲들아
억장으로 무너지던 실패한 습작들아
자투리도 끄트머리도 없이
흐느끼다 저물던 사랑아 그러므로
누르고 가라 "
시를 읽으며..
이게 어디 시뿐일까
억새밭 같은 인생길은 안 그렇겠는가 하는 생각에도 젖게 하시네요
잘 감상하고 갑니다
늘 건강하시고 건필하소서
활연 시인님,
활연님의 댓글

몇 년 전 쓴 글들을 간혹 읽어보기도 하지요, 그때였고
그때의 상한 마음일 것인데, 좀 고치면 나아지려나 하지요.
삶은 '견딤'이고 또한 향유일 것인데,
일상들이 왜 그리 치열한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우리 동네엔
자살동호회? 이런 분들이 생을 저버렸더군요.
때가 되면 다 수급해 갈 생명인 것을.
갈대가, 흔들림을 그리고 꽃핌을 은유한다면,
동족 같은 억새는 '억'세다 이 말에 붙들리는 것 같습니다. 임사체험을 한 사람도
있다 하는데, 그런 거 차치하고 사는 일은 一 버티는 일 아닌가 싶어요.
자의식 덩어리인 인간의 시각으로 보자면, 자연은 태연한데
인간 마을은 속속들이 슬픔 구석이니.
루소가 아니더라도, 자연에서 배울 일은 많다, 그런 생각.
늘 시를 내밀하게 보시는 눈,
부럽습니다.
깊은 푸른 가을밤 되십시오. 고맙습니다.
香湖님의 댓글

잘 지내시지요?
어쩌다 보니 저도 이미지 행사 할 때나 들리게 되는군요.
일천한 공력에 쓴다는 것 자체가 제겐 무리인 것 같아 머릿속이 하예집니다
늘 님이 부럽습니다
활연님의 댓글의 댓글

저에게 시는 어쩌면 공깃돌 아닐까 싶어요.
심심하면 까불며 노는.
요즘 쓰는 일을 제껴두고, 그냥 마실이다!
그렇게 시를 생각하는 마음이 갱년기입니다.
푸른 피가 흘러야 할 것인데,
더욱 쇠락할 것이다, 이러다 시도 들들시시해질 것 같아요.
저도 향기로운 호수님이 부럽습니다.
시엘06님의 댓글

이 가을이 가슴을 훑고 가듯
바람이 마음을 훑고 가듯
시가 몸을 훑고 계절로 접어들게 하네요. 아, 참 멋지네요. 감탄사만....
좋은 가을로 풍성하시길.
활연님의 댓글의 댓글

시 동굴을 파고 갱저를 누벼야 무슨 옥돌이라도 볼 것인데
좀 나른해진 탓.
감성과 물기가 좔좔. ㅎ. 그래도 간혹 더러 가끔
각질 같은 시들이 무얼까 생각해보곤 해요.
그러나 답을 모르니까 헤매는 수밖에.
늘 황금빛 가을하세요. 푸른가을하늘님.
오영록님의 댓글

혓바닥이 꼬이거나 발박자고 엉키면 님의 시를 읽습니다.
헝클어졌던 닭대가리에 새벽이 오곤 합니다.
아구구 허리야~~
활연님의 댓글

이곳에 푸는 것 말고 진짜 비장의 카드,
처럼 뭔가 숨겨놓을 게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백년에.
나도 이제 뱃살 두근반 세근반 늘어가므로 시도
나른해지는 건 아닌지.
저는 '운'을 믿습니다. 먼 훗날 운 좋으면 쓸 수도 있겠다,
그런 게 어느 때부터인지,
아구구 두야~~
소리를머금은비님의 댓글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는게 신기해요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