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의 설장(雪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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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아홉살 동생이 말띠고개 화장터 뒷산에 첫눈으로 내리던 날
비를 동반하던 먹구름 나는
눈이 이렇게 따뜻한데 눈사람을 어떻게 만들까 걱정했지
일흔 여섯살 아버지가 하늘 공원 눈송이로 부서지던 날
죄 많아 먹구름이 된 나는
눈이 이렇게 따뜻한데 녹아 버리면 어쩌나
납골 항아리에 눈을 가두었지
따뜻한 나이였던 네가
한 발 한 발 주워서 브레지어 안에 넣고 싶은 발자국을 남기고
눈보라가 되어 떠나던 날
바람을 전전하느라 만신창이가 된 먹구름 나는
처음으로 눈이 이렇게 차가운데
손이 시려 어쩌나 걱정을 했지
얼어붙지 못하는 눈사람이 자꾸 꿈길 어귀로 흘러들고
겨울이 여름으로 흘러가도 흘러가지 못할 잔설이 밥때마다 얹히고
너만 제대로 얼어붙어 수세포처럼 흰 설원으로 나를 덮었구나
하늘 공원에서 이미 화장 된 나를 식히며
오히려 뼈를 섞는 듯 너의 설장은 죽음처럼 긴 밀합이라
오히려 네게 흩은 내가
푸른 움을 돋보기처럼 볼록하게 돋우며
너의 숨결을 모아 동토에 구멍을 뚫고 아지랑이를 지피리라
네가 불러 왔던 봄이
네게 바쳤던 혼을 바람에 흩는 너의 손길이 머릿결을 파고들듯
외려 나는 묶었던 머리처럼 풀린 눈빛으로 설원을 끌어 덮으며
불의 뼛가루가 되어 스러진다
나로 인해 지친 먹구름, 너도
네 몸 부수어 나를 덮겠지
너는 녹고 나는 꽃이 되는 날
우리 뼈 아픈 弔
[이 게시물은 시마을동인님에 의해 2016-07-20 10:58:54 창작시에서 복사 됨]
댓글목록
활연님의 댓글

이 시 참 경건한 마음으로 읽게 됩니다.
감정이 역류하지 않고 시인의 눈동자 안에 울렁거리는 듯.
그러므로 그 성찰과 사색, 죽음 혹은 삶을
환기하는 소리들이 먼 산에서 들리는 새소리처럼 맑습니다.
이것이 '울림'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하루카오리님의 댓글

우리 문단에선 개끝발 연애시인데요 뭘 연애는 맘대로 않되야 시가 되는데 연애도 시도 졸라 개판 부르스 ㅋㅋ 그래도 졸시라도 한편 쓰니까 침몰된 마음이 건져지네요 쌩꿍! 그 질긴 엄마 아버지 연민과 도덕 종교 윤리의 올가미들로 부터 벗어난 선생님의 미학을 위해 건배 입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