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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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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박성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80회 작성일 16-06-29 22:33

본문

수세미

 

한 생을 다했다는 듯 아버지

오래된 외투를 벗어 벽 쪽으로 곱게 밀어 놓으셨다

마른 수세미처럼 외투를 벗어난 몸이

남은 곳 하나 없이 마르고 누렇게 색이 바랬다

갈 바람에 바싹 마른 수세미 같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다 경험을 해 본 듯 한 오래된 몸이다

 

바위는 힘이 세고

바람은 발이 빠르고

저녁은 손이 커서 주위에 사람이 많다며

아버지 어린 나를 큰 무릎에 앉히고는

세상 여기저기에서 나고 자라는 얘기들을

내 손에 소복하게 담아주셨다

내 손 때가 묻은 듯 까맣고 반지르한 무릎이

바스락 거리며 부서지는 갈잎처럼 가늘고 길다

 

부서져 버린 것이 어디 무릎 뿐이랴

손사래 치면서 끝내 다하지 못한 말[]들이 있고

밤새 속을 태우다 어둠 속에서 채 거두지 못한

이름들도 까만 그리움으로 다 부서졌다

끝을 모르고 세상 속을 헤맸던 몸이라

외투를 벗어난 몸은

깊은 계절 그믐밤처럼 고요하고

끝내 찬 바람에 툭 떨어지는

마른 수세미처럼 쓸쓸하였다.

[이 게시물은 시마을동인님에 의해 2016-07-04 11:55:23 창작시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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