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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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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그믐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1,292회 작성일 16-01-21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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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1.

소녀 같은 밤이로다
시골의 까만 거죽 속으로 걸어가는 낮은 지붕들
해골 위에 면사포를 씌운 듯 천지를 눈이 덮는구나 
경이의 밤은 램프에서 빛나는 가시면류관을 쓰고 
눈물지으며 때론, 구겨진 은박지처럼 신경증에 시달린다 그대는 결국
검은 핏물 흐르는 하늘을 이고 가는구나


2.

연인들이 묘비명 차갑게 도열한 거리를 지나간다
철사 같은 신경줄을 친친 감싸고 있는 꽃의 근육들이 불거질 때
연인들 서로 다른 언어로 속삭이며 자작자작  영혼을 졸이는 밤
그러니 우리의 사랑은 결국
서로 저을 수 없는 거리에서 식어가겠지

밤의 화면은 공중에 매달린 채
어둠을 흘리면서 꺼져간다

그대 사랑의 구유에 눈이 내릴 때
잠들지 않는 짐승들의 커다란 혓바닥에는
별들이 쏟아지는구나
별들이 녹아서 흐르는구나


3.

눈내리는 밤
어둠과 빛의 혼인이로다

야맹증에 걸린 바람들은 동지의 혈관 속에서 길을 잃고 
물 위의 달 속을 울고 간다

수심 가득한 조화造花의 이면처럼 숙취로 인해 입꼬리가 비틀린 미소로다

소녀의 초경 같은 꽃망울 터지듯 
붉게 눈내리는 밤이구나



[이 게시물은 시마을동인님에 의해 2016-01-25 11:08:30 창작시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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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활연님의 댓글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가장 부드러운 검을 쓰는데 종이를 베도 소리가 없군요.
취모검처럼.
강렬한 이미지나 특이한 지점을 골라 앉는게 다반사인데
소소함에서 채굴한 사금으로 커다란 형상을 빛나게 빚으시네요.
욕심이 없는 듯하나, 바람에 휘적이는 풀잎 같이 유연하고
또 또렷한 빛이 느껴집니다. 그 풀빛으로도 진한 향이 우러나올 듯.
더할나위없다, 이런 말 안 쓰는데 여기 내려놓고 싶네요.
잘 감상했습니다.

그믐밤님의 댓글

profile_image 그믐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요즘 시가 잘 써지질 않아 써 놓고 긴가민가해서
메모장에 넣어 둔 거 하나 둘 꺼내 다시 보고 좀
그럴듯 해 보이는 건 손좀 봐서 올리고 있습니다.
습작의 무모함에 광대역으로 해석해주셔서 감사드리고,
사실 이 시의 일부는 활연님께 빚진 바도 있습니다. 
늘 공부하시고 다른 문우들께 기꺼이 그것을 나누시는
모습 참 고마운 일입니다.

달의지구님의 댓글

profile_image 달의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로다~는 별로...귀로 듣는 눈, 문성혜 표...
일본 소설 모래의 여자,를 읽고 있는 기분...

야맹증 걸린 바람...요 대목에 방점 하나 찍습니다.
동지, 라는 말을 들으면 늘어진 고무줄 같다,는 생각이 들곤합니다.
서로 저을 수 없는 거리와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구요.

그믐밤에 눈 내리는 마을,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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