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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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기억
산과 산을 넘으며 벌초를 한다.
포터에 실린 짐 사이로 당숙과
당숙의 어린아들이 흔들리며 산을 넘었다
올해는 짐이 좀 많다는 생각에 동생과 나는
차에서 내려 깊은 산길을 천천히 걸었다
짙은 풀내음 속에서 낯익은 그 길이 건네는 눈인사에
이 길을 넘어가던 옛날의 나를 만날 수 있었다
모든 연장이 크고 서툴렀던 그때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을 것이다
작고 무른 몸으로 들일을 하다
드는 낫이 지나가고 손가락 두 개가
대롱대롱 파란 하늘 아래에서 열렸다
아버지는 얼른 입고 계시던 런닝을 찢어
두 손가락을 둘둘 말아주셨다
어린 나는 형이 운전하는 자전거에 실려
산 너머 큰 벌에 계신 의원을 찾아
이 산길을 넘었다
둘둘 말렸던 한 덩이의 런닝이 횃불처럼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 불덩어리에서 핏덩이가 눈물처럼 뚝뚝 떨어질 때 쯤
지친 형의 몸이 비틀거리며 좌우로 흔들릴 때 쯤
비릿한 그 피내음에 산짐승들이 내려오지나 않을까
두려움에 눈물이 날 때 쯤 그때서야
멀리 의원이 계신 마을이 눈으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짙은 풀내음 속으로 동생과 나는
멀리 의원의 집을 비틀거리며 찾아가는
어린 형제의 뒤를 말없이 따라갔다
몸이 기억하는 그 아픈 시간들을 따라 가는 우리들 뒤로
나무와 나무사이 조각 난 파란 하늘이
만국기처럼 펄럭이고 있었다.
[이 게시물은 시마을동인님에 의해 2016-01-12 18:50:13 창작시에서 복사 됨]댓글목록
안세빈님의 댓글

양수로 부터 물려받은 몸의 기억은 치매가 걸려도 숟가락은 드는 법입니다.
형제,
자매,,,,,,,,,,,,,,,,,,,,,,,,,,,,,,,,,,,
.
삶이 각박해지면서 내가 형제를 버렸다 해도 묻혀질때 몸의 기억은 치매가 아닐듯합니다.
삶의 기억에서....
살아계신 백석시인님께...
박성우님의 댓글의 댓글

말이 형이지.. 나보다 두살 많던 형은 덩치가 나랑 비슷했습니다.
그 먼 산길을 자전거로... 지금 생각하면 깜놀입니다.
두 아이만 그 먼 길을 보낸 부모님도 정말 깜놀입니다. 요즘 같은 상상도 못할....
덕분에.. 아직도 손톱이 쪼개져 나옵니다.
Sunny님의 댓글

유년의 집은 외딴 잠실이였지요
놀 친구도 없고 뭐..그러다 보니 아제야 꽁무니 따라다니며 놀던 때
나무하는 산에 따라갔지요
아제가 톱으로 소나무 한 그루 넘어뜨려놓고 지게에 있는 낫 좀 갖다 달라했지요
그 낫을 든 그 때
하필 저녁 노을이 왜 그리 아름답던지
그만 엎어지고 말았지요
지금도 내 오른 손 중지에는 그 아제야가 있고 그 저녁노을이 있지요.
그 아제, 우리집에서 3년 살았었는데..
그때는 몰랐지요
주인집 딸 손 아무는 동안 얼마나 가시방석이였을까???
한번쯤 보고 싶기도 하지요
그때 나이도 스무살 채 안밖이였을 텐데.
처음으로 잠시나마 마음 설레 본 사람이였는데.. ㅎㅎ
박성우님의 댓글의 댓글

서울에서도 나무 하던 시절이~~
그 아재 상처 아무는 동안 가시방석 이었을 듯~
활연님의 댓글

"추억은 시간의 미궁으로 떨어져 쌓이는 부식토...
추억은 생명보다 길다"
앙리 보스코, 『이아생트』에 나오는 말이지요.
스토리텔링이 아름답네요.
박성우님의 댓글의 댓글

이것도 촌에서 많은 걸 경험하지 못한 거에 대한 자격지심 일 겁니다~
맨날 추억의 부스러기나 만지작 거리는~
건강하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