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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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어 (빙어 축제장에서)
정연희
얼음집을 짓는다는 것은
따뜻한 몸을 믿는다는 것이다
강이 거대한 지붕으로 두께를 더해가는 동안에도
흰 꽃잎은 왜 날리는지
막 얼음장이 되려는 빙점이 헤엄치고 있다
딸려오는 파닥거리는 빙점
기름지느러미로 방향을 잡을 때에도
작은 파문 하나 그리지 못했던 넓고도 좁은 길
내장까지 말갛게 드러내고도 그 누구도 설득하지 못했다
여리고 투명한 떼들이 몰려
천 배나 되는 몸을 만들어도
그 나약함은 마찬가지
딸려 올라간 것들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위에서부터인지 아래서인지
얼음의 두께는 점점 두꺼워지고
지느러미의 눈금들은 빙점을 허물고 있다
얼음장 밑이라고 다 추운 건 아니다
작은 빙점 한 마리에는 미세한 열이 있다
투명하지만 결코 따뜻하지 못한 내력
어느 손맛에 끌려가는 동안만 꿈틀 거리는 빙점
마지막엔 낚시 바늘의 힘으로 파닥 거린다
그때서야 얼음집을 물골에 던진 날이었을까
훤히 보이는 내부를 지탱하는 가는 뼈와 미열
얼음 밑은 그렇게 흘러가니까
파장 무렵 호수의 지붕을 들어내면
돌아가는 길 지워버린 빈자리에
잔설에 미끄러진 산자락 하나 슬며시 들어와 있다
첨벙, 빙어 한 마리 산을 흔든다
[이 게시물은 시마을동인님에 의해 2016-01-12 18:59:09 창작시에서 복사 됨]댓글목록
활연님의 댓글

이미지가 흩어지지 않고 집중적이고 입체적입니다.
그 안에 고드름처럼 박힌 말씀들이 달게 읽힙니다.
세세한 눈으로 그린 그림 한 장의 울림.
빙어가 산을 흔드는 경지까지.
잘 감상했습니다.
誕无님의 댓글

흐름을 타는 솜씨,
언어를 다루는 솜씨 빼어납니다.
창작시방에 올려놓으신 글 모두 잘 감상했습니다.
꾸준한 활동 부탁합니다.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