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장(鳥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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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거든
즐거운 조장을 치르라
황막한 들녘 굶주린 새떼들 우글거리는 곳에
내 껍데기를 던져다오
차디찬 살점이 뜯겨나가고
두 눈알이 파여 삼켜지고
심장에 남은 피가 부리를 물들이고
무른 뼈들마저 찢겨나가거든
그리하여 초승이 부풀어 보름이 되기도 전에
형체도 없이 들녘에서 사라지고
굳은 뼈만 흙에 뒹굴다 바람에 씻기다가
재와
먼지로 돌아가거든
나 하늘에서 크게 웃으리라
살아 생전
자식새끼들 한번
배터지게 먹이질 못했으니
주린 새들에게라도
내 마지막 남은 껍데기를 공양하여
業을 씻으리라
나도 배터지게 먹이고 왔다고
상제께 아뢰며
큰 소리로 당당히 아뢰며
높디 높은 곳에서
우 하하하
크게,
크게 웃으리라
[이 게시물은 시마을동인님에 의해 2015-12-22 11:56:40 창작시에서 복사 됨]
댓글목록
성영희.님의 댓글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가방에 넣어 전세택시에 싣고
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
.
.
.
황동규 시인님의< 풍장>
한 구절이 생각나네요...
과연 나는 죽어서 무엇 하나라도 아낌 없이 내어줄
자신이 있는가... 반성하며...
반가웠어요 시인님^^
李진환님의 댓글

눈 높이를 맞춰주셔서 감사해요.
언제 한번 더 맞춰주시길...
이종원님의 댓글

동이님의 외줄타기 같은 노련함과 아슬아슬함이 한데 어울려 탱탱한 맛이 납니다
그 던져줌의 다른 한 줄은 시마을에 시를 던져줌으로 오독해도 될까요?
기꺼이 내주는 베품과 나눔의 다른 획으로로 읽으렵니다.
시쓰는농부님의 댓글

방죽에 빠져 죽은 사람을 건지려고 온 마을 사람들이 난리를 치는 것을 보고 지나던 스님이
딱하다는 듯 말했답니다. "허허, 수장(水葬)을 하나 애써 건져서 매장을 하나 그게 그거지."
육(肉)보시(包施)로는 매장 만한 게 없다더군요. 대자연으로 회귀하면서 육신은 미생물과
벌레들의 먹이가 되고 썩으면 거름이 되니까요. 요즘은 화장이 대세지만 사실 공기나 대지를
오염시킬 뿐이지요. 조장으로 새들의 먹이가 된 후에는 새처럼 가벼운 몸이 되어 훨훨 날아갈
수 있겠네요. 저도 한 표 드립니다. 삶과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좋은 시, 잘 감상하고 갑니다.
활연님의 댓글

오래 묵혔다가 꺼내신 것이로군요.
휘휙 쓰시고 휙 던지기 잘하는 창 멀리던지기 선수인 동이님의
퇴고작.
영희 말대로 황동규 저리가,
오늘도 신명나는 하루 되세요.
윤희승님의 댓글

졸편에 걸음하셔서 격려말씀 주신 성시인님, 이선생님,이종원님,시쓰는농부님, 활연님, 고맙습니다
연말 잘 마무리하시고 희망찬 새해 맞이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퇴고작은 아닌데 시상한계 때문에 언젠가 비슷한 풍의 글을 적었었던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