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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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다는 건
이포
초록이 갈색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
갈잎, 갈색이 되는 동안
갈 곳을 잃은 바람들이 들녘을 배회할 때
마음은 한없이 드높은 하늘이 되지
바람의 사이로 쏟아지는 햇볕들
무언가 말하고 있어
나무뿌리에 앉아 들어 보면
부서져도 서럽지 않으려니 부서지라는 건데
뼈마디가 가벼워지는 느낌으로
허공중에 흩날리는 고요를 꿈꾸지
회오리에 휘말려 푸른 하늘이 되기도 하고
슬퍼도 너무 말라 눈물이 안 나지
이젠 가을 산, 물들일 기력조차 남아있질 않아
행복하다는 건 다 부서지는 걸지도 몰라
가끔 구름이 부서져 내려 축축하게 뼈를 어루만지며 씻어주지
외투 깃을 치켜세우며 종종거리는 발소리들
앙상한 뼈마저 밟혀 먼지가 되면
차가운 그곳에 뼈를 묻고
어느 고요한 봄날에 스며들어
몸속에 봄기운으로 살아나겠지
다시 태어난다는 생각
기꺼이 부서져야지 그래서 가을은 설렌다고
피가 마르고 뼈의 몸집이 부서져 내려도
이 가을엔 다 버리고 싶지
댓글목록
박커스님의 댓글

이 시인님,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나무들의 깊은 계절갈이 같이
풍성한 마무리 기원드릴게요.
건강하세요.^^
이포님의 댓글의 댓글

네! 박커스 시인님도 건강하시고 알찬 결실 거두시기바랍니다.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네요.
학원 학업 관계로 무척이나 분주하시겠네요.
신의 은총을 빕니다.
무의(無疑)님의 댓글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 줄 알았는데
갈잎, 갈색이 물들면 초록이 되는 군요.
감상하고 물러납니다.
사인방은 여러가지 일이 겹쳐
어려울 것 같기도 합니다만, 암튼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기를 ....
이포님의 댓글의 댓글

네! 정 시인님 고맙습니다.
우리 모두 기대한만큼 결실이 크진 못했지만
올 한 해 참 보람있었다고 봅니다.
아무튼 최종까지 끈 놓지 말고 기다려 봅시다
행운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