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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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권
허물어진 담장 너머로
깨진 항아리 몇개와 푹꺼진 툇마루가 보인다
시든 들풀의 마당을 지나자
어둠과 축축한 바람만이 들고 났을
반쯤 열린채 쓰러진 문짝과
바람벽에 벽시계처럼 매달린 소쿠리가 부옇다
언제였는지 알지 못하는 그 체념의 시간이
박제된 짐승의 표정으로 나를 읽고 있다
딸그락거리는 수저 소리도
싸리비로 마당을 쓸던 늙은 아비의 기침 소리도
그믐달처럼 수척했다지
그해 단풍 질 무렵에
서울 사는 아들이 데려갔다는 옆집 김씨의 목소리가
가랑비 때문인지 연신 쿨럭였다
오래전에
동네 아이들의 시끄러운 숨바꼭질을 내려다보며
입이 근질거렸던,
시집온 색시가 그늘에 쪼그리고 있던 저녁을 훔쳐보던
그 감나무에 매달린 홍시 하나
등이 굽은 지붕 위에서 환하다
[이 게시물은 시마을동인님에 의해 2015-11-26 12:12:22 창작시에서 복사 됨]
댓글목록
산저기 임기정님의 댓글

잘 읽었습니다.
읽는 내내 그림을 그려보았습니다.
요즘 시골에 가면 동네마다 몇 가구는 비어 있는
저 또한 시골에 살던 집이 옛 주인을 기다리듯 있는
빈 집을 보면서 마음 한편이 싸 했는데
이 시를 읽으면서
아주 잘 읽었습니다.
더 멋진 작품 기대하겠습니다.
편안한 하루 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