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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접몽(胡蝶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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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박성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48회 작성일 16-05-11 19:49

본문

호접몽(胡蝶夢)

 

나른한 봄날 오후

아내가 모로 누웠다

 

대숲을 지나는 바람처럼 쌔쌔

가늘고 긴 숨소리가 내 곁을 지나갔다

꽃놀이 나온 나비 같이 팔랑팔랑

아내는 집안 구석구석 잘도 찾아다닌다

두 발을 감으며 가늘고 긴 핏줄이

몇 개의 상처를 돌아나갔다

저 상처로 이 허름한 가계(家系)

안녕을 오랫동안 지켰을 것이다

털썩 주저 않던 순간들을 저렇게

몸속으로 하나하나 깊이 새겼을 것이다

아픈 시간들을 지우려 이불을 살짝 당기자

아내는 하얀 발목을 스르르 풀며

가계(家系)의 안녕을 위해

고요한 수평을 찾아

어디론가 천천히 날아갔다

 

어느 고운 세월을 만나

깊은 상처들을 말갛게 씻고 있는지

어느 그리운 이름들 곁에 서서

입에 맞는 것들을 나눠 먹고 있는지

봄날 오후를 옮겨 다니는 아내의 걸음이

사뿐사뿐 살갑고 가볍기만 하다

나는 이 고요한 수평이 흔들릴까봐

자리를 옮기려 조용히 걸움을 딛는데 문득

내가 아내의 꿈속에 모로 누운 건지

내 꿈속에 아내가 모로 누운 건지

알 수가 없어 뒤를 한 번

천천히 돌아보았다 

[이 게시물은 시마을동인님에 의해 2016-05-13 11:30:23 창작시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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