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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굼벵이라고 개명하였다 /秋影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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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추영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623회 작성일 15-08-28 11:33

본문

 

 

 

그는 굼벵이라고 개명하였다  /秋影塔

 

 

 

 

 

가난을 다 털어서 술 두 병을 산 그가

가난 속으로 기어들어갈 때만은 돈이 들지

않는다

칠전팔기는 생각도 못해보고 발기 한 번 제대로 세워보지

못한 이력에서 경력까지를

오늘 밤엔 남김 없이 다 마셔버리자고

덤불같은 머리채를 늘어뜨린 촉수 낮은 백열등을 노려보지만,

 

 

이것들을 술에 섞어 마시기에는 술이 턱없이 부족하겠다

술을 더 사올 가난마저 동이 났고

멀리서 들려오는 별이 새끼별 까는 소리는 안주거리도

못 된다 그러자니 안주는 무無에서 꺼내 씹고 시간은

유有에서 맘대로 퍼다 쓸 수 있는 그런 밤이었다

 

 

별밤을 달밤이라고 우기며 문을 연다

문에 별 몇 개가 걸리고 그중 하나는 찍- 하며

별똥을 싼다

유성 같은 똥인지 똥 같은 유성인지

술 한 병 더 사려면 온 집안의 가난을 더

뒤져봐야 할 듯싶지만 그마저 기력이 달린다

정 마실 게 없으면 풀잎이 걸러주는 감로주라도 마시자며

가난의 해부도를 필사적으로 필사하는 그는

 

 

가난 속에서만 의무 같은 권리가 생기므로

밤의 배꼽 아래 세 치쯤에서 올라오는 슬픔은 언제나

누선에 실금을 긋는다 그는 언제부턴가 존함을 분실하고 풀기 없는

이름만 쓰다가 그것도 어디론지 금방 사라질 것만 같아 스스로

‘굼벵이’라는 별명으로 개명하였다

취기인지 발악인지 솔방울처럼 방안을 굴러

다니다가 빈병과 빈병이

서로를 쏘아보는 광경을 오랫동안 바라보던 그!

내일의 운수를 엿볼 요량으로 눈을 감는다

 

 

 

 

 

 

[이 게시물은 시마을동인님에 의해 2015-09-01 11:24:55 창작시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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