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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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희승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3건 조회 1,829회 작성일 15-09-06 17:20본문
오랜 응달에서 새겨진 비문의 형체는 쓸쓸해 보인다
마흔 둘,
어릴 땐 그도 그늘 바깥에서 뛰놀았다
뒷산의 뻐꾸기소리며
진달래 피는 소리며
첫사랑 두근거리던 가슴과
앞산 엄마 무덤가에 잡초를 뜯던 어린 손을
탁본 뜬다
지나간 여자가 없기에 같이 뜰 여자는 없다
허기를 달래던 라면 몇 가락과
절뚝거리던 왼 무릎의 시린 소리와
삭이던 외로움 몇 자락과
술잔에 일렁이던 울음의 파문 몇 개도
눌러 뜬다
그 흔한 아버지의 이름도 비문엔 없다
한 생애를 뜬다
젊은 날을 비껴가던 햇살의 문양을
끈덕지게 달라붙던 불운의 촉수를
망울이다 만 꽃자리의 흉터를
소용돌이치던 설움의 파편을
꾹꾹 눌러
뜬다
어쩌면 나였을지도 모를
한 음각의 비문,
갓 태어난 아기의 숨소리를
탁본한다
영안실이다
[이 게시물은 시마을동인님에 의해 2015-09-09 11:52:03 창작시에서 복사 됨]
댓글목록
수퍼스톰님의 댓글
수퍼스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서서히 읽어 내려가다가 수렁에 빠졌습니다.
머리에 총맞은 듯한 신선한 반전입니다. 늘 건필하시길...
윤희승님의 댓글의 댓글
윤희승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풍성히 수확하는 가을 되시기바랍니다
나문재님의 댓글
나문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탁본...
전생이 알고프냐, 이 생에 받은바가 그것이다
내생이 알고 프냐, 이 생에 지은바가 그것이다...왜 부처님의 말씀이 생각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