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그락담 너머 남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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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6건 조회 1,291회 작성일 16-08-25 16:13본문
사그락담 너머 남빛
1. 그늘집
처마 밑 늙은 개가
휜 등뼈를 우그러뜨리고
긴 혓바닥으로 뙤약볕을 덜어낸다
봉숭아 꽃물 든 울타리
쇠스랑 자루 없는 삽 이 빠진 낫 부서진
기구 등속을 지키고 있다
멸망한 시대를 잎살에 새긴 은행나무는
고약처럼 끈끈한 똥을 눌 것이다
마당 어귀 무국적 꽃잎이 적막
안쪽을 비추고 있다
2. 외등
건너편 외등이 흐린 불빛을 늘였다 줄였다 한다
빈 외양간 해진 닭장 빈 구석을 채운 눅눅한 적요 먼지 쌓인 빈방에 누워 헐거운 혼, 껴입어 본다
댓글목록
활연님의 댓글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마음 얼레를 푸는 밤
박연준
얼굴이 자꾸 반으로 접힌다
목 뒤에서 머물다 간 바람
기다리다 파김치처럼 죽고 싶다
퍼렇고 거무죽죽하게 검버섯 피어
이게 내 사랑이라고
쉰 목소리로 노래하고 싶다
바이올린을 타고 밤을 여행하고 싶다
슬리퍼 안에 들어가 추운 잠자고
일어나 낯선 창가를 서성이다,
어느 집 부엌에 핀 고요한 아침에
가만히 이마를 대고 싶다
실 끊고 사라지는 오래된 마음을
얌전히 놓치고 싶다
돌아보면 뒤가 파란
박연준
노란 꽃 속을 돌아다녔다
거친 계단을 만났다
갑자기 가슴이 볼록해졌다
내 잘못은 아닌 것 같았다
꿈속에서도 거짓말을 했다
솜털처럼 복슬복슬, 부드러운 칼이
이봐, 여긴 내 침대야!
곤두서서 외쳤다
거미줄에서 만난 남자와 두 손을 잡고
몸을 비벼 꼬며 기도를 했다
냄새가 났다
땅속으로 들어가
여왕개미가 알을 낳는 풍경을
오래, 구경했다
내 실크로드에는 개미들만 오갔고
나는 그들의 검은 발자국을 베고 누워
오줌을 쌌다
아주 따뜻한 강이
흐르는 듯했다
한밤중엔 무릎을 꿇고 앉아
지난 계절의 이름을 불러보거나
빙그르르 돌면서 춤을 췄다
가끔 눈 속으로 별이 떨어졌고
아침이면 눈을 떠
별들의 시체를 꺼냈다
`
강태승님의 댓글
강태승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시인은 신이다 -고은- ㅎㅎ
활연님의 댓글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마 잡신일 듯. 헛다리나 잡고
시와 시인이라는 존재는 인간 세상에 두루 있는 거.
가을엔 흰 고무신 신고 숲길 걸으며 나무가 떨구는
붉은 울음소리 들어야 할 듯싶습니다.
고은 시는, 문의 마을에 가서/ 부터가 참여적이고 민중적이다는 생각.
시원한 밤 되세요.
이종원님의 댓글
이종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성글게 짠 단어의 직소속에서 가을 바람을 맛본 듯 합니다
더위를 잘 다려먹었으니 솟는 기운으로 가을엔 뭔가 해봐야 할 것 같은, 뭔가 등 떠미는...
인사 드리고 갑니다. 활샘!!!
안희선님의 댓글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올려주신 시를 읽으며, 새삼 드는 생각..
시는 결국, 모든 단절을 표백하는 意識이란 거
그늘집, 외등
그 같은 단절이 형이상학적이던, 심미적이던,수사학적이던,
시간과 공간적이던 간에 시는 결국 그 단절적인 상황과 함께
그와 반대적인 상황을 동시에 수용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다시 말하면, 시의 저와 같은 상반적 두 상황의 수용은
의식적인 면과 동시에 무의식적인 면을 띠고 있음도 느껴집니다
뭐랄까..
비현실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과의 만남,
비이질적인 것과 이질적인 것과의 화합,
혹은 비합리적인 것들의 병치속에 싸여있는 합리적 요소 및
나아가서는 현재 또는 미래와의 동시성 등이
함께 자리함을 엿 볼 수 있다고 할까요 (어디까지나 저 개인적 소견)
따라서, 시인에게 있어 시는 절대시할만 하고
시 이상의 소중한 결과는 없다고 자부할만 합니다
저도 이런 시... 쓰고 싶어지네요
깊은 시, 잘 감상하고 갑니다
늘 건강하시고 건필하세요
활연 시인님,
활연님의 댓글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사뭇 가을입니다.
가을은 참 서정적인 때, 자연은 늘 신비롭고 변심이 없고.
아침엔 비 오는 숲을 걸었는데 가을을 채근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지구가 빠른 속도로 돌듯이
태양이 더 커다란 원을 그리듯이 은하가 또 어딘가로
흘러가듯이 세월은 흐른다 싶습니다.
가을!
새로운 계절은 늘 설렘이다, 싶은데 결실 그득한 때이기를 바랍니다.
늘 다정한 이종원 형
자상하게 죽은 시를 읽을거리로 환기해 주신 안희선 시인님
황금빛 가을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