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11】심비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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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1건 조회 1,088회 작성일 16-09-07 16:09본문
심비디움 Cymbidium
한 분盆 오래 있다
잎사귀 널따랗게 푸른 긴장을 놓치지 않았지만
발 뻗을 자리가 맨바닥까지다
낡은 황포돛배; 어디로도 흘러갈 곳 없는
마당 초입 늙은 개처럼 혓바닥을 늘어뜨리고
오가는 등에다 청태를 입혔는지 모르겠으나
목숨줄 간당간당 닿은 주전자 끝물로 버티고
성에꽃이 정강이뼈를 걷어차고 대걸레가 용골을 스윽 핥아주었을 뿐
원통하게 죽은 지박령이 졌소이다, 하고 가겠는데
어쩌자고 슬그머니 꽃숭어릴 내밀었다
이만저만 치욕도 외려 다 저버린 듯
우주 한 모퉁이가 장엄하다, 너스렐 떨었더니
절치, 부심腐心─ 꽃 피는 소식 닿자마자
가슴 한복판에 검은 꽃 기별이 왔다
어떻게 웃어야 환한가, 카론의 뱃삯 한 닢
꽃비 그치고 꽃물 이울어야 입안에 다무나
어떤 신비가 꽃을 깨우듯 그 죽음 지체하라던
수만 시간 괄시받던 푸르스름한 오기 한 숭어리
수천 배拜 절한 티가 난다
댓글목록
활연님의 댓글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름다운 마음들이 모여서
황인찬
어느 날의 수업 시간, 내가 좋아하던 아이가 내게 속삭이듯 말했다
"나는 곧 죽을 거야. 나는 네가 참 밉다."
머지않아 그 애는 전학을 갔고 그 애를 다시 보는 일은 없었지만 나는 생각했다
좋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그 애가 없는 저녁의 교실을 혼자 서성이다 본 것은 저 너머의 작은 산이었다
작은 산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었다
세계의 끝이 아니고, 누군가의 죽음도 아닌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나는 한 가지 일만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
책벌레09님의 댓글
책벌레09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네요.
잘 감상했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활연님의 댓글의 댓글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가을은 벌레들의 날,
숲에서 들리는 그 소리들이 참 좋지요.
책 속에서도 울긋불긋 하세요.
고현로2님의 댓글
고현로2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한 화면에 한눈에 꽉 차는 느낌...
심비디움, 신비로운 작품을 감상해봅니다.
황포돛배, 개의 혓바닥 다 맞는 이치이군요.
청태나 대걸레, 지박령의 뜻 등 비범한 표현에 존경심이 절로라
수천 배 절을 하고 싶어집니다.
언제고 술잔을 기울이자고 푸르스름한 오기 한 숭어리로
떼도 써봅니다.
활연님의 댓글의 댓글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 글은, 리얼~,
사무실 귀퉁이에 있는 듯 없는 듯했던 것이
아무 표정 없던 것이,
우연히 꽃을 피워 올리더군요. 몇 년 참았던 울음처럼.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질기고 고단한 탄생 연후에
또 꽃 진다는 소식이 있었어요.
그맘때까지는 산 사람이었는데, 이내 검은 강을 건너고 말았지요.
생명은 마치 한 꽃대에서 흔들리는 것 같이.
뭐 산문 같은 것이지요. 좀 고침.
요즘은 밤낮없이 열중쉬어 자세를 유지하고 있답니다.
늙어, 공부 하지니 눈알이 엉덩이가 자꾸 보채지만,
겨울에는 한가로이 술잔 기울일 날이 오리라.
그때를 위해, 사부작사부작,
훈남께서도 가을 이삭 무겁고 추수가 황금벼락 되시길.
쇄사님의 댓글
쇄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재주가 메주라서 방법은 모르지만,
혹 '느린 우체통'을 다녀가는 걸음 있다면
읽지 마시고, 위에 위에
한 분盆 오래 있다
절치, 부심腐心
수천 배拜 절한 티가 난다
거기, 다녀가라 하고 싶네. 요
이 정도면, 시마을이 '감사'할 일이지, 요.
활연님의 댓글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뭐 마음엔 안 드는 글이지만, 어느 때를 상기해보았지요.
꽃 핀다, 꽃 진다가 한통속이란 것에 화들짝
놀라지만, 애써 몸부림하는 것도 있고 또 아쉽게 지는
것도 있고. 누군가가 곁에 있다면 그 모닥불
오래 쬐며, 숨 쉬는 동안 꽃 피울 일이다 싶어요.
'느린 우체통' 보다 깜박 잠들었는데
후두두 잠깨니까 꿈에서 본 시가 아니라 환생한 시더군요.
너무 좋아, 가서 문안이나 드리렵니다.
창방에선, 늙고 짓무른 것밖에 내놓을 수 없는 깜냥!
숫돌 다 닳아 없어지면 그제서야, 칼자루 없는 걸 휘두를지.
최정신님의 댓글
최정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신비디움...저 난은 물을 안주고 위태로이 길러야
종족번식의 오기로 꽃을 피우지요
꽃 한대에서 오만 언어의 향이 나는 시어가 탄생했으니
신비하긴 합니다
꽃을 피운다는 건 즉 다시 살아야 한다는 절규겠으나
그 또한 죽음으로 향한 시작이겠습니다
멋진 은유와 영감...그 꽃대에 카론의 뱃삯 한 닢 대신 마음의 호사로 조문합니다
늦더위가 안간힘이지만 지금은 꽃도 잠든 가을밤...맛난 꿈 꾸세요^^
활연님의 댓글의 댓글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닥 족보도 없는 란이 희디흰 꽃잎을 내미니까,
수백 년 전에 잃어버린 사람이 돌아온 듯
느껴졌지요. 문간 바람에 펄럭이면서도 존재감이
없었는데, 수년만에 꽃 피우고,
그맘때 또 먼길을 떠난 사람도 있지요.
생멸은 늘 가까이서 일렁인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동전 한 닢 입에 물고 갈 것을.
뭐 그리 탐할 게 많을 것인지. 꽃처럼 절명하는
일, 잠깐 눈부시다 그치는 일.
그런 가운데 치열도 이열도 있겠지요.
가을이 산그늘을 타고 번지는 때입니다.
좋은 일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시엘06님의 댓글
시엘06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만한 묘사라면 꽃의 외관이라기보다 꽃의 본질을,
아니 탄생과 죽음의 속내를 묘사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꽃 뿌리를 꿰뚫어 수천배 절을 길어올리는, 이 묘사야말로
진경 그 자체입니다.
활연님의 댓글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사이버엔 그냥 맹탕으로도 버티자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아직 시를 몰고 어디로 가얄지
모르겠는 고로,
그냥, 애완용 시 한 마리 목덜미나 쓰다듬으며,
머릿속이 용광로인데 잠시
음과 시를 생각하는 건 休.
눈 내리면 그때부터 시 쓰자 그런답니다.
늘 좋은 시로 오시는 하늘님.
넉넉하시고 촉촉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