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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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5건 조회 1,768회 작성일 15-10-03 20:50본문
뚱딴지
전봇대 끄트머리 애자 두엇 앉아 있다
수천 볼트 머리띠 두르고 발 묶인 몸통을 돌아
발 빠른 세기가 건너간다
굽은 뼈 뭉쳐서 한 주먹
동강 난 사지를 깁는
깨진 발통을 달아 달리는
꿈꾼다 한번 치솟아보자고
뒷골목에 눕던 그늘
전봇대를 기어오른다
새끼를 까고 먹이를 물어다 목구멍 깊이 찌를 일 없으니까
이편저편 돌아나가도 결단코 묵묵한 말뚝을
허공에 핀 뚱딴지꽃을
녹슨 못에 저녁을 걸어놓은 온몸이
파문을 그친 소용돌이라 부르면 안 되나
없는 다리가 가려운 새
해발 십여 미터 금줄에 앉아
흰 눈동자 굴리며 사위를 당긴다
뼛속으로 캄캄해지는 겨울을 향해
부리를 몸속에 찔러넣고
지저귄다
, [이 게시물은 시마을동인님에 의해 2015-10-09 15:12:22 창작시에서 복사 됨]
댓글목록
활연님의 댓글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박 준
이상한 뜻이 없는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 오늘 저녁부터 바람이 차가워진다거나 내일은 비가 올 거라 말해주는 사람들을 새로 사귀어야 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익숙한 문장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려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 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
안희선님의 댓글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참, 많은 게 함의된 시 한 편입니다
어찌보면, 산다는 거 자체가 뚱딴지 같은 일인지도..
하지만, 그 뚱딴지 같은 거라도 있기에
살아지며 이렇게 시도 씌여지나 봅니다
추석, 한가위는 잘 쇠셨는지요
- 저는 당연 잘못쇠었지만 (웃음)
좋은 시에 머물다 갑니다
활연님의 댓글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환절기 바람을 잘 못 쐬어서 제 목소리가 이상해졌습니다.
가을 저녁의 밝은 달은 어디라도 한결같을 것인데
외롭게 지내셨다면 유감입니다.
외려 명절이 번잡스러운 날이다, 뭐 그런 잘못된 생각도 드는데
중천에 걸린 달만 환하고..
오랜만에 안 되는 글을 끄적거리는데, 역시나 작위적이단 느낌이 드네요.
나뭇잎들이 물드는 품새가 이내 가을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늘 좋은 일, 환한 일 많으시길 바랍니다.
뚱딴지는 관습적 사고로는 불통이지만, 그놈이 견디니까 불길도
건너간다, 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무의(無疑)님의 댓글
무의(無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계시지요, 잘
저도 며칠 전 '뚱딴지' 굴리다가
(담배 끊어야지)
'인자'님 말씀을 축약한 농담 하나,
나중에 우려 먹으려고 겨우 추려놓은 뼈다귀 하나,
캐기는 캤습니다.
뚱딴지 어원 고찰
절치부심, 더는 미룰 수 없어
풍전등화, 노부부가 날을 잡았다
분기탱천, 찌를듯한 기상으로
촌철살인, 구석구석 예리함으로
분골쇄신. 몸 바쳐 황홀을 보여주겠노라
경국지색. 혓바닥까지 풀어가면서
가가호호, 다 들리도록 한바탕 치루나니
두문불출, 할배 힘이 보통 아니다
권토중래. 지난번 아쉬움까지 달래려는 듯
물아일체. 물밀듯 밀어붙여
천상천하. 하늘인지 땅인지
안분지족. 끝이 없어 그지없이 좋았는데
백발백중, 그 마지막 순간에 짐짓 빗나가자
과유불급, 이 무슨 뚱딴지같은 짓이매
천고마비, 고추 시드는 가을도 가더라
.............................//
뚱단지
헛꽃 터진다
속내가 궁금하다
붐비던 날개
花들짝
이슬을 터트린다
거미가
나비를 관통한다
가끔 있는 일이다
활연님의 댓글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댓글이 더 시로군요.
잘 계시쟈? 나는 지독한 몸살이..
여름과 가을 사이를 앓는 것인지 ㅋ.
영혼이 살찌는 가을 되시얍.
요즘 박준이 베스트셀러라네요.
낙서
박준
저도 끝이고 겨울도 끝이다 싶어
무작정 남해로 간 적이 있었는데요
거기는 벌써 봄이 와서
농어도 숭어도 꽃게도 제철이었습니다
혼자 회를 먹을 수는 없고
저는 밥집을 찾다
근처 여고 앞 분식집에 들어갔습니다
몸의 왼편은 겨울 같고
몸의 오른편은 봄 같던 아픈 여자와
늙은 남자가 빈 테이블을 지키고 있는 집
메뉴를 한참 보다가
김치찌개를 시킵니다
여자는 냄비에 물을 올리는 남자를 하나하나 지켜보고
저도 조금 불안한 눈빛으로 그를 봅니다
남자는 돼지비계며 김치며 양파를 썰어 넣다말고
여자와 말다툼을 합니다
조미료를 더 넣으라는 여자의 말과
많이 넣으면 느끼해서 못 쓴다는 남자의 말이 끓어 넘칩니다
몇 번을 더 버티다
성화에 못 이긴 남자는
조미료 통을 닫았고요
금세 뚝배기를 비웁니다
저를 계속 보아오던 두 사람도
그제야 안심하는 눈빛입니다
저는 휴지로 입을 닦다말고는
아이들이 보고 싶다, 좋아한다, 사랑한다,
잔뜩 낙서해놓은 분식집 벽면에
봄날에는
'사람의 눈빛이 제철'이라고
조그맣게 적어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