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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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3건 조회 1,638회 작성일 15-10-13 19:41본문
목인 木人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리던 인디언은 뿌연 먼짓길을 망연히 바라보다
꽃과 나무가 있는 곳에서는
영혼이 따라와 붙어주길 기다린다는데
<게르다> 게르를 치고
이를테면 몸을 빠져나가 백년동안 떠돌던 혼은
천천히 돌아와 불구를 읽는 것이니까
눈썰매를 끌고 빙점을 향해 가는
목인木人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듯이
먼지 모자를 쓴 말도 사람도 절며 뒤따라오는 내아內我를 기다린다는데
황량한 들로 뻗은 눈빛 빛난다는데
그러므로 꽃과 나무가 길어진 제 그림자를 거두고
짧게 만나고
오래 헤어지는
백야처럼 희디흰 어둠은 있다는데
댓글목록
활연님의 댓글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에밀
신동욱
전년에는
어미가 죽은 새끼를 낳았고
아비는 소 묻는 시늉만 하고 염통을 꺼내 먹었다
아궁에 불을 지펴 대나무를 구부리고
구부린 대나무에 나일론 실을 매고
수수깡에 대나무 촉 꽂고 닭 털 붙여 뛰쳐나가는
아이는 애먼 새끼 소 무덤에
염통 없는 새끼 소 무덤에 활질을 해대다
진흙이 다 먹어치운 종아리는 밤새 남아나지 않아
정지문 대청에도 잠드는 이 하나 없다
그래도 금년엔
백열등 마당을 비칠거리는 송아지
제 어미 염통 먹은 아비 손이 뱃속으로 쑥 들어갔다
꿰차낸 송아지 백열등 아래
태반을 뚝뚝 들으며 뛰는데
머리는 차게 하고 발은 뜨겁게 하라
머리는 차게 하고 발은 뜨겁게 하라
감나무에 표창을 박으며 되뇌는데
아이는 항시 가슴께가 먼저 들끓는다
들끓어도 먼저 들끓느니 새끼 소는 수소가 되어 불알 덜렁이며 천지사방 갈아엎는데
갈아엎으며 장딴지 굵어 어느새
소꼬리 땅을 쓸고 영문 없이 사라지는데
사라지는 음메에 소리마다
네가 소 새끼냐 사람 새끼냐
네가 소 새끼냐 사람 새끼냐
양말을 두 겹째 끼워주며 아비는 또
널 대처로 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널 대처로 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박박 밀어올린 머리를 긁적이는
소 새낀지 사람 새낀지, 비칠
여태 제 갈아엎을 땅이 없어
허공에 두 다리 쑤욱 들리고
,
안희선님의 댓글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木人>, 나무사람의 얘기를 쓰고 있다
근데, 요즘 같은 차가운 금속성 시대에
이런 목인은 그 어디서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치고 꽃을 피울지..
어쩌면, 목인은 오래 전에
멸종했는지도 모를 일
하지만, 시적 상상력 속에서 대상을 관조하는
시인의 의젓함과 따뜻함이 보인다
아, 그리고 보니..
아메리카 인디언도 우리 피붙이 동이족의 한 갈래가 아니던가
드넓은 시베리아 평원에서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리던,
그 활달한 기상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그 목인들은 그들이 지닌 꿈과 함께 백인들에게 무참히 학살당했지만)
비록 지금 이 세상에 백야처럼 흰 어둠이 지천으로 깔려있더라도,
목인이 지녔던 사랑과 생명의 꿈이
다시 빛나는 세상의 아침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시 속에 배어드는 상황 - 무리없는 - 이야 어쩔 수 없더라도,
그렇게 뵈게끔 하는 시인의 필력이 부럽다
시 속에 배어있는 "사랑과 생명의 꿈"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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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잘 감상하고 갑니다
늘 건강하시고 건필하세요
활연님의 댓글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마도 요즘 세상엔 투명인간도 유령인간도 많고
나무인간도 있고 뭐 그러겠지요. 가을이 되면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지는데, 자연을 보면 오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리는 때를 알아 '절정'으로 치닫고
또 맨몸이 되는 걸 보면, 순환하는 일도 긍휼하다는 생각.
시가 뭐지? 그런 질문도 무색한 계절입니다.
늘 좋은 일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