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14) 메밀꽃 피던 화전 > 우수창작시

메밀꽃 피던 화전

이영균


십여 리를 돌아내려 꺼내 문 담배 한 대에
산길 곳곳이 연기 속에서 되살아온다
나무지게를 벗어 놓고 손을 씻던 골짜기 작은 계곡물
 
두드러진 손가락의 상처를 만져보는데
낫에 베여 흐르는 물에 붉은 피를 씻던 아이가
물속에서 햇살처럼 웃는다
 
쌈지에서 입초를 꺼내 손가락을 처매주며
메밀을 베다 베면 흉이 심해서 없어지지 않는다던데
걱정이 태산 같던 젊은 아버지도
아이 옆에 서 있다
 
메밀밭에는 집채만 한 송편 바위가 있어 늘 배가 불렀는데
부자는 어머니 감자떡 도시락을 먹는다
아버지가 총각김치 어슷 베어 물면
이파리 쪽은 아이 차지다
 
너럭바위엔 장수하늘소와 구렁이가 살고 있어
낮잠에 빠진 아이에게 커다란 구렁이가 덮쳐오면
작은 장수하늘소는 산처럼 커져
아이를 지켜주는 수호신이 되곤 했다
 
식은땀을 씻어 내릴 때쯤 아이의 땀
씻어주던 그 하얀 수건 이쯤에 걸려있었는데
나는 하늘색 수건으로 물기를 씻으며
아버지와 함께 일어서는데
 
아버지는 어느새 산 너머 사라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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