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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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초보운전대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1,180회 작성일 17-03-30 16:21본문
치매
기억의 잠금이 닳아 헐거워졌다
백지 위에 고스란히 기록되는 여백의 바람
바람의 허리에 고목의 울렁거림이 흔들린다
깊은 동굴 속 어둠이 나뭇잎같이 변해 나풀거린다
높은 꼭대기를 넘어버린 생의 시장기가 수시로 방문할 때마다
말의 꼬리는 망아지 뛰듯이 말썽 부리면서 수다스러워진다
꼬리 흔들 듯 말을 흔들고 있는 할머니
생의 모서리는 오리무중이다
구부러진 기억만 홀로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가는 곳마다 저승꽃이 한 송이씩 만발하다
요양소에 방치되어버린 할머니의 기억이
가슴에 매달렸다가 머리 정수리 위에 올라가 굴러 떨어져
목이 꺾이면 어쩌나 싶어 바라보는 근심이 하얗게 빛을 뿌린다
초라한 침대에 사로잡힌 할머니의 한 생애가
저 침대 속으로 파고들어 가버리면 어쩌나
유리창으로 들어온 매화꽃이 붉그리 하다
승화원의 불꽃은 바쁘게 초조하게 타 올렸고
한 장의 중이에 기록된 할머니의 이름이
너무 가벼워 할머니가 숨을 쉬었던 자리마다 눈물이 고였다
먹구름 두둥실 떠가는 하늘 저편에 뽀얀 비 붉은 비 흰 비가
쿨럭이는 조등이 저승길 밝히며 졸고 있다
댓글목록
오경숙182님의 댓글
오경숙182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안녕하세요 시인님
치매, 정말 무서워요
호랑이 보다 더 무서워요
가장 처참한 마지막 모습이죠
잘 죽을 수 있는 것도 복으로 타고 나야 하나봐요
언제나 건안하시고 문운을 빕니다.
좋은 글에 감사드립니다
슈뢰딩거님의 댓글
슈뢰딩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기억의 잠금이 닳아 헐거워졌다
기력이 다하고 걸음이 느려지면서
기억의 고리를 얼마나 열었다 닫았다 하셨을까요.
저희 할머니는 요양원에 다녀오시며 자기 이름을 따라 그린 연습장과
분홍의 색종이로 접은 꽃을 들고오십니다. 화사한 분홍색을 좋아하세요.
집앞 화단에 심어두면 혹시라도 멀리 떠나시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보고 머무실까요.
날씨가 따뜻해집니다.
집 생각이 나게 하는 글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