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없는 저녁이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공백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437회 작성일 18-04-17 06:55본문
저녁이 없는 저녁이었다 / 공백
저녁을 굶은 저녁이었다 어두운 방 마른 멸치처럼 누워 고양이를 기다렸다 오늘 밤에는 까끌한 혀로 핥아줄까 어제 네가 물어뜯어놓은 흰 실뭉치가 창밖에 매달려있어 밤의 내장은 왜 이리 구불구불하고 길지 골목길의 잊힌 음식물 쓰레기통처럼 나는 기다렸다
낡은 나무 문에 기대어 문고리를 돌리면 매번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너에게 붙인 이름 적막, 현관문부터 냉장고 화장실 티브이의 빈 채널음까지 사뿐사뿐 발소리가 들렸어 말랑한 발바닥으로 나를 한 번만 만져주겠니
적막의 식도와 기도가 이어져 있다는 걸 아니 허기지다는 건 숨이 가쁘다는 이야기 먹고 마시고 취하고 쓰러진 날들이 등을 들썩이며 기침을 했지, 한 줌의 들숨과 날숨이 기침을 했지, 길게 내쉬는 한숨도 기침을 했지, 기침을 한다는 건 야위어간다는 거야 마른 멸치 같은 등을 쓸어주며 내 방은 네 방이 네 방은 우리의 방이 되고 우리는 그것을 하얀 방이라 불렀다 적막에게는 색깔이 없었으므로
자취를 감춘 적막은 여전히 적막이었다 저녁이 없는 저녁이었다
추천0
댓글목록
연못속실로폰님의 댓글
연못속실로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처음뵙겠습니다. 고양이의 이미지가 적막과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말랑한 발바닥을 보드랍게 느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좋은 시 잘 읽었습니다~
공백님의 댓글의 댓글
공백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감사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