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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11> 화가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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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윤희승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48회 작성일 15-12-09 08:50

본문

 


자유의 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슬픔은 영원하다고 나는 믿어왔으니까요

 

어려서 죽은 형의 무덤가에는 사이프러스나무가 있었습니다

망자의 영혼이 하늘에 닿기를 소망하는

키 큰 나무의 가지들에서 날개가 돋았습니다 새가 된 나무.

그 나무는 캔버스에 칠해진 내 꿈의 조각이기도 합니다

 

스쳐간 사랑은 너무 미끄러워서 내 마른 등허리에서 흘러내렸습니다

소망하던 구원은 교회당 안에서만 따듯했기에
나는 외롭고 쓸쓸한 길을 택했습니다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귀에서 벌레들이 소란을 피워대는 숱한 밤이 지나갔지요

 

나는 내게 나를 묻곤 했지만 나는 나에게 외면당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내가 병동에서조차 그 쓸쓸한 작업에 광기를 부린 까닭은

안식 없던 내 영혼을 캔버스에 방생하고 싶었음입니다

꽃이 된 태양에 그토록 매달린 것도 같은 연유입니다

붓을 들면 영원으로 놓인 길이 보이는 듯도 하였습니다

 

불친절하고 괴팍하고 예의라곤 없는 한 사내에게

거울이 생겼습니다 나는 얼마간 불안을 견뎠습니다

낙원에서 추방당한 무리들에게 형벌은 필연인 걸까요

별리 말입니다 어떤 헤어짐은 죽음 보다 잔인합니다

 

다시 들이닥친 고독이 병약한 영육을 후려쳤습니다

삶은 온통 소용돌이치는 달무리에 휘말린 것 같았습니다

서른 일곱, 캔버스에 피를 토한 지 십 년, 때는 찼습니다

이제 한 송이 꽃이 태양으로 돌아갈 때입니다

 

탁자에 권총 한 정, 총알은 뜨겁고 싶습니다

 

슬픔의 심장을 표적으로 세워야 할 시간입니다

수선화 피어있는 들판 어디쯤이나

까마귀 나는 밀밭 어디쯤에서

이글거리는 태양이 저 하늘로 솟구쳐 오를

때가, 그런 때가 되었습니다

 

 


[이 게시물은 시마을동인님에 의해 2015-12-13 16:16:12 창작시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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