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4】꽃 울음 > 우수창작시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우수창작시

  • HOME
  • 창작의 향기
  • 우수창작시

     (관리자 전용)

☞ 舊. 우수창작시  ♨ 맞춤법검사기


창작의향기 게시판에 올라온 미등단작가의 작품중에서 선정되며,

 월단위 우수작 및 연말 시마을문학상 선정대상이 됩니다

우수 창작시 등록을 원하지 않는 경우 '창작의 향기' 운영자에게 쪽지를 주세요^^

(우수 창작시에 옮겨진 작품도 퇴고 및 수정이 가능합니다)


【이미지4】꽃 울음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3건 조회 1,707회 작성일 15-12-09 11:08

본문

        꽃 울음




    새가 뛰어내린 나뭇가지가
    휘다가 멎는다

    가열한 바람이 나뭇가지에 멎으면 꽃이 된다
    죽은 시간에 화관을 얹듯
    떠돌이 말간 눈이 굶주린 새처럼 나뭇가지에 앉으면 수국이 된다
    가풀막 기어올라
    산등성이 기꺼이 넘어온 것들이 흰 뼈를 나무에 건다

    나뭇가지에 맺힌 흰 눈동자를 꽃이라 쓰고
    눈자위 번진 눈물이라 읽는다
    톱 연주하는 능선이 휘어지다 부딪히면 멎음이라 쓰고
    흰 새떼 산란을 나무에 달아 준 시린 눈망울이라 읽는다

    마른 각피를 긁어대자 칼바람 냄새가 난다
    꽃술도 없이 벌떼를 불러모아
    죽은 사람 입술에 가만히 손을 얹어보듯
    나무 인중에 손가락을 얹으면
    희디흰 침묵

    바람을 향해 날을 세운 꽃잎이 차다
    능선엔 꽃이 버린 칼날이 수북하고 눈먼 나비떼가
    불의 뼈들을 흩뿌리고 있다
    맨살로 강철로 건너온 바람이 꽃눈 물어다 산정에 멎어야
    새벽빛을 향해 묽은 눈 씻어야

    언 나무가 열꽃 단다
    산꼭대기 안갯속에서 몸을 부풀린 새들이 나뭇가지로
    꽃을 옮긴다

    칼날을 입에 문 꽃이 청동색으로 운다


[이 게시물은 시마을동인님에 의해 2015-12-13 16:18:16 창작시에서 복사 됨]
추천0

댓글목록

활연님의 댓글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제 노래에 취한 새


                김충규




제 노래에 취한 새가 잠을 잔다
어둠 속에 섞인 빛을 끄집어내듯
잠 속에서도 새는 노래의 리듬을 타고 있다
나뭇가지에 앉은 새가 끄덕끄덕
졸면서도 추락하지 않는 건 그 리듬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지은 노래를 무수히 듣고 살아온
내게도 새처럼 저런 순간이 한 번쯤 허락될 것인가
내가 몰래 숨어 부르는 노래를 듣고
누군 어둡다고
누군 쓰라린 물결이 출렁인다고
누군 상처를 뚫고 새살이 차오르는 듯하다고
중얼거리며 지나갔다
내 노래에 취한 적이 없었으므로
나는 내 노래에 대해 말할 게 없었다
스스로 취할 만큼의 노래를 지어 부르려면
대체 얼마만큼 깊고 맑은 폐활량을 지녀야 하는 것인가
한참 후 잠에서 깬 새는 제 노래를
땅에 쏟아버리고 입 다물고 날아갔다
새 노래를 짓기 위하여 가슴을 부풀리려고
시퍼런 잎사귀 너울거리는 숲으로 날아갔다





시집 『아무 망설임 없이』(문학의전당, 2010)



김충규 

1965년 경남 진주 출생. 1998년 《문학동네》 신인상 당선, 시집 『낙타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그녀가 내 멍을 핥을 때』『아무 망설임 없이』.


* "저승의 가장 잔혹한 유배는
  자신이 살았던 이승의 시간들을 다시금
  더듬어보게 하는 것인지도 몰라, 중얼거리며
  이 꽃 냄새, 이 황홀한 꽃의 내장,
  사후에는 기억하지 말자고
  진저리를 쳤다" 『꽃멀미』에서

  이 시인은 이렇게 시참(詩讖)하고 천궁의 시민이 되었다.
  (*시참: 특별한 생각 없이 지은 시(詩)가 신기하게도 뒷일과 꼭 맞는 것.)

시꾼♪님의 댓글

profile_image 시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위 아래 글들이 쿡 찌르는, 그래서 그 여운에 한참을 발을 담구다가,,, 내 노래는 안녕한지  나는 몇개의 칼날을 물고 청동색으로 우는지 죽은 새의 목으로 끄덕끄덕 하다가  ,,,몇 개의 비의를 발견하고 벽쪽으로 벽쪽으로 휘어지다가 흠뻑 젖은 발걸음으로 나갑니다

좋은 하루 되삼 활 ^^ㅎ

활연님의 댓글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점심은 맛나게 드셨는지요. 햇살이 눈부신 날이네요. 온천지에 널브러진 게
서정시이지만, 좋은 시는 참 어렵다, 그래서 연습구를 던지다보면, 어깨가 나가고
고관절이 무너져 걸을 수도 없고, 그 지경이겠지만,
그냥 노닥노닥 끄적끄적 살아가지.
9회말 마무리를 투입하고 싶은데, 그 마땅한 마무리가 없네요.
요즘은 삽질보다도 허공을 향한 주먹질이 많습니다.
겨울엔 산에 많이 다녀야겠어요. 앉은뱅이책상이 될까, 싶으니까요.
쌍절곤 들고 오십시오. 몇년 만인지, 한참 즐겁겠습니다.


아래는 한 묶음이라,




겨울 산
  ─ 덕유산 향적봉

활연

 


  겨울 산은 정물이 아니라 동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육식성이 아니라 채식성, 그러니까 너른 들판에서 풀을 한가로이 뜯고 있는 소의 목덜미나 발정기에 든 엘크처럼 더러 사납다가도 또 목을 늘어뜨리고 바닥에 지천한 풀과 꽃을 뜯는 그 식물성이 연상된다. 풀과 나뭇잎으로 배를 채우고도 저녁 무렵 제집이라고 찾아오는 가축이거나 힘없는 산짐승이거나 어쩌면 밤불을 켜고 덤비는 야행성 포식자들의 발걸음 소리에도 낙엽 바스락 깨지는 소리에도 놀라는 순한 짐승이 연상된다.
 
  짐승들은 노을이 붉어지면 붉어진 마음을 한적한 섶 구석에 뉘고 언제라도 두리번거리는 잠, 그 풋잠으로만 생을 관통해야 하는 풀먹이동물들에겐 두려움이 단단해져 이마에 뿔이 솟는다. 그 뿔은 공격보다는 방어용 무기이므로 꽃나무처럼 언제라도 꽃잎을 달듯 아름답고 또 처연하다.
 
  그러나 겨울 산은 비루먹은 짐승처럼 헐벗었으나 칼날 같은 바람과 산다. 그 바람이 날아와 꽃을 달기도 하지만, 그 꽃은 나비나 벌이 물어갈 수 없는 꽃이다. 그러므로 설산의 눈꽃은 입으로 먹는 꿀이 아니라, 눈으로 마시는 향기다. 나뭇잎이 사라진 흉터마다, 푸르고 세찬 강이 흘렀던 줄기마다 눈부시게 매달린 꽃들은 나뭇가지에 잠시 앉았다 떠나는 새들이다. 겨울나무들은 수시로 새떼를 쏘아 올린다. 빙벽을 긁어 새하얗게 내린 것들은 시각적으로는 따뜻하다. 그러나 나뭇가지는 얼마나 속이 시릴까. 꽃을 뱉어낼 때 통증은 아마도 짐승이 탯줄을 끊을 때와 비슷하리라. 어쩌면 시각적으로 아름답다고 느끼고 감탄하는 순간에도 그 찬란을 내뿜는 것들은 차디찬 절망이 떠받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높은 설산은 신들의 영역이라는데, 신들은 가혹한 바람이 불고 눈안개가 앞을 가리는 곳에 앉아 지상을 어떻게 조망하고 있을까. 사람에게 시련이란 꼭대기에서 바닥까지 구르는 돌멩이들처럼 단단할까. 나무들이 얼크러져 산을 붙들고 거대한 암벽이 흘러내리는 산을 막고, 그런데도 칼바람이 빗물이 무시로 산을 깎는다. 그래서 산들은 서로 스크럼을 짜고 흘러내리는 것을 막는 자세로 유장하게 뻗어 있다. 그러므로 한 봉우리라도 허투루 서 있지 않고 그 고단한 마디나 옹이로 서서 우뚝하다.
 
  바다로부터 자란 키, 해발 몇 미터는 사실 추상일지 모른다. 누구나 직선으로 산을 오를 수는 없다. 산은 어슷하게 혹은 굽이를 돌고 돌아야 한다. 어처구니(추녀마루에는 잡상(雜像) 또는 상와(像瓦)라는 동물장식을 설치하는데 이것이 어처구니다.)들을 밟고 하염없이 걸어야 공중의 한 바닥에 닿을 수 있다. 어처구니가 없다면 아마도 해수면까지 미끄러지지 않을까. 그러므로 겨울 산은 추상을 눈에 적시며 구상을 밟고 걸어야 한다.
 
  어처구니없게도, 우리는 산을 정복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나폴레옹이나, 우주의 군주를 꿈꾸었던 테무친이나 그들은 한때 광활한 영역을 정복했으나 사실 그것은 신기루였다. 인간이 정복할 수 있는 건, 두 개의 심실과 두 개의 심방을 가진 마음 하나를 정복하기도 어렵다.
 
  그러므로 산을 오른다는 건, 잠잠한 해수면처럼 낮은 곳에서부터 자신의 키가 자라는 것이다. 조금씩 공중부양하는 것이다. 그러나, 산꼭대기에 올라도 자신의 키가 한낱도 자라지 않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산을 오른다는 것은 수평적인 기준으로 높이가 높아지는 건 사실이지만, 시야가 트인 만큼 인간이라는 아주 작은 생체를 확인하는 것이고, 인간의 욕망이란 것이 대자연의 감정에 비하면 보잘것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겠는데, 그런 엄숙한 자연과 만나야 아주 작은 소리, 이를테면 소곤거리는 소리를 자신의 귓가에 흘려주고 자신의 목구멍 깊이 잠긴 소리를 자신에게 들려주는, 그야말로 자신의 감각이 무수한 기공을 열고 그 숨구멍을 열고 환해지는 장면과 만나기 위해서, 주춤서기하듯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은 아닐까.
 
  나는 다울라기리도 낭가파르바트도 시샤팡마도 로체도 초오유도 마칼루도… 가보지 못했다. 아니 근처에도 얼쩡거리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어릴 적 자란 동네의 14좌 정도는 수시로 정복하고 살았다. 나잇살이 끼고 몸은 천근에서 만 근까지 무거워지기 시작했는데, 더 무거워지면 바닥에 납작하게 누워 고요해지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산을 오르는 건, 나에게 살기 위해서 죽는다는 게 맞다. 그런데 그 죽을 맛이란 게 묘하게도 쾌감을 동반한다. 가령, 젖은 땅에 먼지 나도록 두들겨 맞고 정신이 혼미해졌을 때, 그래 더 때려봐라 하듯이, 온몸이 녹초가 되는 기분이 좋다. 그것은 무슨 성취동기도 아니고 정복감도 아니다. 나른한 내 안의 세포들이, 늦잠을 자는 얼굴에 찬물을 붓듯 일시적으로 각성하는 기분이랄까. 뭇매질을 당하고, 나른해지는 내 육체의 피곤이, 게으른 잠에서 드디어 깨는 느낌이랄까. 결국, 산을 오른다는 것은 내안(內案)의 권태와 슬픔과 지루함과 관습적인 동선들 그리고 묵은 때처럼 무지근한 내 타성들과 만나는 일일 것이다. 나를 한 발자국씩 발굴하는 일일 것이다.
 
  산을 오르는 일은 가파른 숨 가쁜 가풀막을 헐떡거리고, 또 걸어온 수만 발자국을 헤아려보기도 하는 것이어서, 참 무모한 나를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외줄로 뻗은 산길을 걷다 보면, 점점 그 생각이란 것도 하얗게 증발해버리고 만다. 어디까지 가야 닿을까. 사실은 닿고자 하는 꼭짓점도 없다. 산정엔 늘 콧날을 벨 듯 드센 바람이 휘몰아치고 눈안개가 시야를 거룩하게 한다. 자연은 더 보여줄 게 없으므로 하산하거라, 이렇게 말하는 듯. 발톱과 부리를 뽑아버린 솔개가 아니라면 꼭대기에서 차고 오를 곳은 더는 없다. 어쩌면 뾰족한 허공의 바닥을 확인하고, 더는 높이 솟을 기분 없이 또 하산하는 걸음을 재촉한다.
 
  덕유산 향적봉은 두 번 올랐다. 예전에 그곳에서도 눈꽃 천지를 보았는데, 그 감흥으로 졸시, '꽃 울음'을 썼다.


      죽은 사람 입술에 가만히 손을 얹어보듯
      나무 인중에 손가락을 얹으면
      희디흰 침묵

        .........

      언 나무가 열꽃 단다
      산꼭대기 안갯속에서 몸을 부풀린 새들이 나뭇가지로
      꽃을 옮긴다

      칼날을 입에 문 꽃이 청동색으로 운다

          *─ 활연『꽃 울음』부분.


  어떤 독자가 청동색 울음이 어디 있느냐 했다. 그래서 향적봉 1,614m를 올라가면 그렇게 우는 눈꽃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했다. 청각을 시각화한 공감각적 표현이지만, 책상머리에 앉아 읽으면 와 닿지 않는 표현이다. 청동은 불상의 재료로 자주 쓰인다. 그래서 그것은 항구성과 불멸의 기원을 담은 빛이기도 하겠다.
 
  산을 타는 사람들은 스스로 생고생을 자처한 사람들이다. 어쩌면 생활의 여백을 찾으러 분주히 어딘가를 누비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베갯모를 일그러뜨리며 쉬는 날 내내 잠을 자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암팡진 암말의 씰룩대는 엉덩이와 잔등을 따라 걷다 보면 안다. 어딘가를 오른다는 것은 누군가의 뒤쪽에 서 있어야 하고, 누군가 찍어놓은 발자국에 자신의 발자국을 포갠다는 것을. 그리고 누구에게도 사잇길이 많아서 편히 내려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회로처럼 돌아 불빛 하나를 켜듯이 혹은 하나의 신호를 점등하기 위해, 출발했던 그곳에 옹송망송 흐릿해진 정신을 끌고 모여야 한다. 생활로 돌아오기 위해 해수면처럼 피곤해진 몸을, 그 편편해진 몸을 높은 해발에서 쿨렁거리는 바닥에 내려놓아야 한다.
 
  겨울 산은 간단없이 발품을 팔아야 거대한 익룡의 그 희미한 발끝이라도 볼 수 있다. 물초처럼 흥건히 젖어야 발가락에서 꼬물거리는 희미한 뼈 하나 만질 수 있다. 그러므로
 
  겨울 산은 뼛속으로 부는 동통(疼痛)이고 눈안개에 가려 더는 볼 수 없는 곳을 더 깊이 보는 쪽에 있다.


`

고현로님의 댓글

profile_image 고현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몸이 미륵 돼지일 때 비대한 몸으로 수원 광교산을 최장거리 코스로 미친 듯이 쏘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춘하추동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광교산을 나이 수만큼 반복해서 가보자, 집 근처 산을 속속들이 가봐야 그 산에 가봤다고 하지 않겠나 해서였죠.

결국은 게으름으로 20대 중반의 숫자로 포기한 것 같습니다. 그랬는데도 몸은 날렵해지고 숨이 차지 않아서 산은 이래서 좋구나 했죠.

술산은 그만 오르고 다시 산을 가봐야겠다고, 청동색 울음을 찾아서 떠나 봐야겠습니다. 장비는 에베레스트인데 마음은 복지깨 잔등도 힘들어하니....에흉~! ^^

활연님의 댓글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산에 많이 댕기세요. 좋아요.

........................


비정성시(非情聖詩)
-그대들과 나란한 무덤일 수 없으므로 여기 내 죽음의 규범을 기록해 둔다

      김경주




  비 내리는 길 위에서 여자를 휘파람으로 불러본 적이 있는가
 
  사람은 아무리 멋진 휘파람으로 오지 않는 양이다 어머니를 불러서는 안 된다 대대장을 불러 세워선 안 된다 이것들을 나는 경험을 통해 배웠다 이것이 내가 여기를 들어온 경위다 외롭다고 느끼는 것은 자신이 아무도 모르게 천천히 음악이 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외로운 사람들은 휘파람을 잘 분다 해가 뜨면 책을 덮고 나무가 우거진 정원의 구석으로 가서 나는 암소처럼 천천히 생각의 풀을 뜯을 것이다

  나는 유배되어 있다 기억으로부터 혹은 먼 미래로부터.
 
  그러나 사람에게 유배되면 쉽게 병든다 그리고 참 아프게 죽는다는 것을 안다 나는 여기서 아프게 죽을 것이다 흉노나 스키타인이거나 미자르이거나 돌궐이거나 위구르거나 돌궐이거나 쿠르트족처럼 그들은 모두 유목의 가문이었다 그들의 삶은 늘 유배였고 그들의 교양은 갈 데까지 가보는 것이었으며 그들의 상식은 죽어가는 가축의 쓸쓸한 눈빛을 기억할 둘 아는 것이었다 그들은 새벽에 많이 태어났고 새벽에 많이 죽었다

  나는 전생에 사람이 아니라 음악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음악은 그때 나를 작곡한 그 남자다 그는 현세에 음악으로 환생한 것이다 까닭에 나는 그 음악을 들을 때마다 전생을 거듭 살고 있는 것이며 나의 현생은 전생과 같다 나는 다시 서서히 음악이 되어가는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간직한다
 
  예감 또한 음악이다 자신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그러나 자신과 가장 닿아 있는 자아의 연금술이다 나는 지금 방금 그녀 곁을 흘러간 하나의 시간을 예감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내 생각은 음악이 되고 한 컵의 물이라는 음악을 마시는 동안 내 생각은 어느 먼 초원 스페인 양떼들의 털을 스친다

  모든 나를 인정하는 순간이 올까? 목이 마르다고. 당신과 함께 사는 동안 여덟 번 말했다

  비 오는 날 태어난 하루살이는 세상이 온통 비만 온 줄 알고 죽어간다
  비 오는 날 태어나자마자 하수구에 던져진 태아는 세상은 태어나자마자
  하수구 속에서 죽어가는 곳이구나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인간의 일이다 그의 어미는 야산의 둔덕에서 하늘을 보며 핏물로 피 묻은 자궁을 씻고 있다 해가 뜨고 개미들이 어미와 태아의 끈이었던 태를 땅 속으로 끌고 간다 나는 망원경을 들고 그것들을 꼼꼼하게 관찰한다 비 온 뒤 축축한 땅에 귀를 대면 누가복음이 들려온다 개미의 저녁 예배를 듣다가 저녁을 굶었다

  나를 견딜 수 있게 하는 것들이 나를 견딜 수 없게 한다 그것들을 이해하지 않기 위해 나에게 살고 있는 시간은 무간(無間)이다라고 불러본다

  내가 살았던 시간은 아무도 맛본 적 없는 밀주(密酒)였다
  나는 그 시간의 이름으로 쉽게 취했다

  유년은 생의 르네상스이다 내가 이슬람교도였다면 나는 하루 여섯 번 유년이라는 메카를 향해 절을 올렸을 것이다 어릴 적 나는 저수지에 빠져 죽을 번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한순간 너무 많은 것을 겪어버렸다 수면으로 가라앉으면서 바라보던 물 밖의 멀어지는 빛, 그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학교에 가지 않고 물속에서 손바닥을 펴 죽은 새들을 건져올리며 나는 그 열락을 기억해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까지 어머니의 젖맛이 기억나지 않아 나는 새벽에 자고 있는 어머니의 가슴을 물어본 적이 있다

  내 고통은 자막이 없다 읽히지 않는다

  모든 사진 속에는 그 사람이 살던 시절의 공기가 고여 있다 따뜻한 말 속에 따뜻한 곰팡이가 피어 있듯이 모든 영정 속에 흐르는 표정은 그 사람이 지금 숨쉬고 있는 공기다 영정을 보면서 무엇인가 아득한 기분을 느낀다면 내가 그를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지금 이곳을 느끼고, 기억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쪽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나의 영정엔 어떤 공기가 흐를까? 이런 생각을 할 때 내 두 눈은 붉은 공기가 된다

  사진 속으로 들어가 자신 밖의 나를 보면 어지럽다.
  시차(時差) 때문이다
  죽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나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할 것 같다
  너무 많은 죽음이 필요했기에 당신조차 들여다보지 않는 질서 속으로 나는 걸어가고 있다

  방안의 촛불이 눈 속에 공기를 모두 연소하고 있다
  촛불은 다른 불빛들과 이웃하지 않는다. 이것이 촛불이 밤에만 피는 까닭이다

  1976~? 나와 생멸을 같이 할 행성이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나의 에테르다

  수음을 하는 동안 몇 천 년 나는 늙어간다
  수음을 하는 동안 나는 나라는 문명이 슬프다

  너와 내가 뜨겁게 안는 순간 문득 우리가 죽는다면 몇천 년이 지나 우리는 화석이 될 것이다 그리고 후세 사람들은 박물관에서 신기하다는 듯이 우리를 만질 것이다 거칠고 딱딱한 질감에는 슬픔이 담기지 않는다 이것이 나의 분노다 나는 비로소 천년이 지나 사람들이 우리를 만질 때 돌 밖으로 눈물을 흘릴 것이다 그것은 너와 나 사이의 야만이다

  기억의 속도는 빛의 속도보다 빠르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일이란 한 번 자살하는 것과 같다 익숙했던 모든 것들과 생이별하는 것이다 저승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곳의 모든 것이 내가 사랑하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낯선 곳에서 잠을 잘 자지 못한다 낯선 곳에서 자는 일이란 저승에서의 하룻밤과 같다 사람은 그 사람이 살아온 생에 다름 아니므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일이란 내가 한 번 자살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칸은 이렇게 말했다 그것이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다가올 때가 있다

  바람이 한 페이지의 얼굴을 넘기며 간다 동풍은 과묵하다 불안은 자기표현의 정직한 양식이다 내가 매일 맞는 주사는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같다.

  간밤에는 부대를 빠져나와 대원들과 어울려 무덤을 팠다 삽날이 두개골에 닿았을 때 나는 낙타를 떠올렸다 사막을 가다가 모래처럼 허물어졌을 낙타, 10리 밖에서는 사람 냄새가 났다 무덤에 묻혀 있던 그의 뼈를 구워 점을 쳤다 그는 은(殷)나라 사람이었다 시를 썼고 세상을 돌아다니며 절벽만을 그리는 화가였다 꿈은 어떤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유배지다

  저 자신의 내면을 도굴하는 것이 꿈이라면 사람들은 꿈이라는 실형을 살고 있는 셈이다 위험한 짓인 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그곳을 다녀올 때마다 다른 비석(飛石)을 세우고 온다 그리고 거기서 데려온 기억의 비문을 문득 추억이라 부른다
  기억이란 인간의 두 번째 생이다 인간은 기억을 기다릴 뿐 기억을 소유할 수 없다 모든 기억은 불구이기 때문이다

  하늘은 지금 분홍천(川)이다 저녁만 되면 병동의 사람들은 예배처럼 창을 열고 저 노을을 가슴에 버린다 창살을 통해 마지막일지 모를 일몰을 바라보며 쓴 사형수의 수기보다 아름다운 시(詩)는 아직 없다 그것은 죽어가는 자의 음악이기 때문이다 나는 죽어가는 것들에게서 나오는 음악을 베토벤이라고 누군가에게 고백한 적이 있다 베토벤은 저 자신이 음악이었다 그는 음악을 만들지 않았다 그는 절박했을 뿐이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귀신이 되는 생도 있겠으나 귀신으로 태어나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르고 이 세상을 살다가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사라져버리는 생들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그 음악을 향해 나의 원시는 바쳐진다 이렇게 시작하는 시(詩)를 쓰고 싶어질 때가 있다

  빛을 보아서는 안 될 운명을 가진 뱀파이어 부부가 죽기 전 스스로 햇볕 아래로 기어가 서로 끌어안고 부서진다 단 한 번 빛을 보기 위해 그토록 많은 피가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누가 뭐래도 수천 번의 밤을 경험했다
  나는 밤에 태어났고 밤에 자랐으며 밤에 시를 썼다 이 사실만으로도 지구에서는 아득할 만하다

  지구에서는 시인의 별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시인의 별에서는 지구가 보인다

  사이다에 지렁이를 한 움큼 담그고 마셔버린 나의 이종삼촌은 자신이 목성에서 왔다고 했다 지금도 나주 백병원에 가면 고모할머니가 가져다준 한약 봉지를 하나씩 개수구에 버리고 있다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고. 삼촌은 이제 마흔이 다 되어 무섭게 음식만을 탐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지구에 와서 배운 것이 휘파람뿐이라고 했다 전남대학교 천문학과 83학번을 수석으로 입학한 삼촌은 휘파람을 잘 불었다 그 삼촌과 나는 어릴 적「로보캅」을 함께 보고 나란히 화장실서 로보캅처럼 오줌 누던 기억이 있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마른 사타구니를 만지며 괴롭다 내게서 꿈이라는 혐의를 빼면 대체로 나는 무죄이다 내가 이곳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복도를 돌아다니다가 생이 끝장날 것 같다
  “개자슥 엄마를 불러!” 면회 온 엄마를 불렀다고 고막이 터지게 맞던 나의 아름다운 후임병(99-71002665)은 누구에게나 거짓말이 늘어났다

  달 뜬 밤 기숙사 창틀에 앉아 비누를 갉아 먹다가 실려 온 저 대책 없이 아름다운 옆방 소녀는 밤마다 쥐가 된다 하수구에서 시궁쥐처럼 발견되었을 때 사람들은 아무도 소녀에게 인공호흡하지 않았다 소녀의 흰 발목과 소녀의 살짝 드러난 하얀 허리 사이에는 시커먼 털들이 무성했다. 젖은 바지는 그 무참함을 가릴 수 없었다. 소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벌벌 떨고 있었다. 그녀의 아름다운은 무성한 허벅지 털의 색감과 질감까지 포용할 수는 없었다. 소문처럼.

  방이 좁아서 더 이상 양떼를 부를 수 없다 서랍과 옷장에도 양떼가 꽉 찼다 내 양들은 물갈퀴를 달았다

  어느 날 망막을 마개처럼 따 올리면 수천 통의 필름이 눈 밖으로 줄줄 흘러나올 것이라 믿는다 눈 안에서 빛이 들어가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필름은 눈 속에 살아 있다 빛이 눈을 아프게 하는 건 눈은 깊고 어두운 성이기 때문이다 아침에 나는 커튼을 치지 않는다 병실은 늘 어둡다

  한 번도 꽝꽝 언 하늘에 연(鳶)을 날려보지 않은 사람과는 나는 놀지 않았다
  찬송가를 백 곡 이상 안다고 하는 사람과는 나는 노래 부르지 않았다
  부모의 주민등록번호를 줄줄이 암기한다는 사람과는 돈거래하지 않는다
  그는 내게 불효를 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릴케의 뜨거운 서시(序詩)를 앞에 두고 자위를 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사랑은 그대라는 성(城) 안으로 들어가 평생 시만 쓰며 살겠다는 것임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한 번도 나는 그런 사람을 살아보지 못했다

  내가 아는 한 칸은 자신이 사랑하는 한 여자를 살리기 위해 소설에 주술을 걸어 그녀를 구할 것이라고 했다 칸은 매일 비명처럼 살아갔다 우리는 절박하게 부패해가는 생의 오류만을 시라고 불렀다 칸의 파오1)를 찾아가지 못한 지 오래다 나는 칸과 자고 일어날 때마다 목 졸라 죽이고 싶은 적이 몇 번 있었다 우리에게 생을 증거하는 것은 고통뿐이었지만 우리의 면죄부가 고통 그 자체일 순 없었다 이렇게 말하고 나면 우리는 근사한 기분이었다 칸과 나는 자웅동체처럼 웅크리고 자는 습관이 있다 배춧잎 같은 이불 위에서 깨어나면 나와 나는 SAM이 된다 현실은 죄지은 것도 없이 우리가 매이 써야 하는 삶의 조서다 우리는 붙어서 걸었고 매일 고개를 숙이고 조서를 썼다 이렇게 말하고 나면 죄짓는 기분이다

  마크툽2)! 기억의 피라미드여 굳건하라 어떤 나든 함부로 파들어가면 묻힐지니 기억은 다 해독하면 곧 달아나야 한다 금방 돌이 떨어지고 벽이 갈라지고 무너지기 때문이다 나는 기역(氣驛)이 무섭다

  바람은 내가 알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 유배된 자들이 내게 띄우는 편지다 잠이 오지 않는 밤 나는 창을 열고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가 그 편지를 읽는다 로비에서 소녀는 달력을 보기를 좋아했다. 그녀의 환자복을 파고들어 배를 부풀리던 바람은 어디서 온 편지일까?

  소녀는음력달이완전히찼을때어두운계단입구에서혼자아이를낳았다내가그녀쪽으로조용히걸어갔을때그녀는거의움직일수없을만큼지쳐있었다너무어두웠기때문에내가누구인지도그녀는확인할수없는상태였다한손에는태를자른과도가힘없이쥐여있었다나는그녀에게다가오는그림자였고그녀도내가보지못한그림자를가진채누워있었다아이는울지않았다나는그아이를안고내방으로천천히걸었다그녀가손을뻗어잠깐동안무엇인가알수없는알아티어를중얼거렸지만이윽고그녀는조용히벽에비친내그림자만만지고있었다나는그아이의몸에밴어머니의피를젖대신먹였다새벽엔가축의젖을물렸다아이의몸에선아일락향이났다사람들의눈을피하기위해나는아침에아이를머리부터천천히삼켰다가저녁이면뱉어내서다시쥐의젖을물렸다아이는내안의굴에서낮에는박쥐처럼거꾸로매달려잤고잠엔내가읽어주는나의시를들었다아이는조금씩눈이멀어갔다아이가다자랐을때나는갈매기의혼을넣어주었고아이는말의몸을빌려달력의초원으로달려갔다아이가떠나기전 내게당신시는영하라고했다나는아이가떠난후쓸쓸해서몽골어를배워보려고했지만곧그만두었다달력에서쏟아지는눈으로방이얼었다

  눈물은 자기 안의 빙하가 녹는 것이다 차가워지려면 뜨거워지는 헤엄부터 배워야한다 뼈의 길을 찾아들어 섬광을 남기는 보검처럼, 칼은 뜨거우면서 차갑기 때문에 멀고 깊은 곳까지 흐를 수 있다 밖으로 나오는 울음은 뜨거워서 타인의 마음을 베지만 안으로 우는 울음은 자신을 베기 때문에 차갑다 눈물은 제 안의 쏙고 있는 어류(魚類)들이다

  하늘은 스콜라 철학처럼 흐른다 구름은 제3의 물결이다 바람은 바카디151처럼 독하다 나무들은 루마니아 전설처럼 고요하다 숲은 한물간 산부인과처럼 조용하다 안개는 논리가 없고 태양은 실천 중이고 호수는 냉소적이다 먹어야 할 알약은 베이컨적이고 경험하지 못한 진실은 아직 내 앞에 평등하고 헤겔보다 나는 기도를 잘할 수 있고 내 기도가 더 형이상학적일 수 있고 1999년 6월 진해부두에서 감전돼 죽은 이 병장보다 돌계단은 차갑다 신은 관념을 품어서는 안 되고 나는 코펜하겐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내가 코펜하겐이라는 음악을 생각하는 동안 나는 코펜하겐이 되고 나는 불합리하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믿는다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쓰고 설명하지 않기 위해 나는 울고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나의 유산이다 아무도 알 수 없는 외국어가 나고 나를 제대로 발음하고 나를 가지고 소통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나는 슬픔에 부상당했고 가난에 고문받았고 종교에 암상당했고 밤마다 임 병장의 자지를 만져주며 살아남았고 대신 매일 시로 자살했고 시로 미(美)를 매혹시켰다
  방에 침을 퉤퉤 뱉는 또 한 마리 모기의 목을 땄다 모기의 뇌(腦)를 먹으면 장수한다는 중국 전설을 믿고 병속에 모아놓은 모기의 머리들을 들고 소녀의 방문 앞에 놓았다 열쇠 구멍으로 소녀가 내 뒷등을 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죽으면 너는 나를 꼭 해부해야 한다 내 가슴을 절개하면 누구 말대로 내 가슴에선 수억의 인류들이 피에 뜬 채 죽어 있을 것이다

  죽이고 싶은 버전이 몇 있다
  너무 아름다운 시를 썼기 때문에 죽이고 싶은 버전이 있고
  너무 시를 아름답게 보기 때문에 죽이고 싶은 버전이 있다
  굴욕을 연민하는 시인은 제 자신의 삶이 한 권의 시집이어야 하고 그 시집은 자아의 병동이어야 한다 그것이 나의 버전이다

  시인은 신이 놓쳐버린 포로다 그러나 포로는 늘 프로다
  내가 가진 유일한 능력은 너와 다르다는 것이다 내가 졌다!라고 쓰는 것은
  단지 이길 수 없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너와 다르다는 이유로 이곳에 산다
  그것이 너한텐 꽤 중요한가 보다

  잠자는 동안 창 밖에서 수천 개의 붉은 눈알들이 나를 내려다본다는 것을 안다 손가락을 다 써버리고 잠든 밤. 내 몸을 빠져나온,‘내가’ 배 위로 올라타서 두 눈을 뽑고 있는 것을 안다 눈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나는 늦은 아침까지 눈을 뜨기 않는 버릇이 있다 그가 다시 내 속으로 들어 오고나면 나는 겨우 눈을 떠 등바닥에 시퍼런 핏물이 지나가는 것을 느낀다

  나는 국적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병사다 나는 7월의 클라이맥스를 안다
  나는 7월에 태어났기 때문에 7월의 음악들을 들으면서 죽어갈 것이다 내 유서는 7월 위에 쓴 나라는 시 한 줄 뿐이다 내가 죽으면 세상의 7월은 수장될 것이다

  나는 이런 것들을 느낀다
  몇백 마일 떨어진 곳에서 마리아 상이 눈물 흘린다
  몇백 마일 떨어진 곳에서 파에 치인 사람이 바닥에서 천천히 눈을 감는다
  몇백 마일 떨어진 늪에서 얼룩말이 악어 입속으로 천천히 들어가고 있다
  몇백 마일 떨어진 전깃줄 위에 사람 하나 새들 사이에 끼여 날개에 고개를 파묻고 앉아 있고
  몇백 마일 떨어진 창 속에서 누군가 탈고를 막 끝내고 숨이 멎었다
  몇맥 마일 떨어진 곳에서 저승사자들이 지하철을 타고 이쪽으로 오고 있고
  몇백 마일 떨어진 곳에서 자신의 출생을 알고 찾아온 아들이 어서 돌아가기를 바라는 어미는 초초하게 거실을 서성거린다
  몇백 마일 떨어진 골목의 대문 앞에서 누군가 나처럼 서성거리고
  오늘, 음악은 참 희곡 같다

  그날 밤 나는 꿈을 꾸었다

  나는 꿈속에서 어떤 호숫가에 앉아 있었는데 저 멀리서 상여를 메고 일단의 사람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사람들이 상여를 메고 호수의 차고 푸른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들이 그곳으로 들어가면 모두 죽을 것이다. 나는 알 수 없는 공포를 느끼며 안 된다고 그들에게 소리쳤다. 그런데 그들은 내 목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다. 나는 고래고래 소리쳐 불렀지만 그들에게서 냄새처럼 퍼져나오는 음악이 내 목소리를 그들에게 전혀 전달해주지 못했다. 그들은 한 명 한 명씩 물속으로 잠겨갔다. 그러다 문득 나는 상여를 메고 물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그들 모두의 얼굴이 내 자신의 얼굴이란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전부 눈동자가 없었다. 그러나 갑자기 나는 상여 속의 망자가 누군지 궁금해졌다. 나는 그들에게 달려가 상여를 덮고 있는 꽃천을 헤치고 관 뚜껑을 열어 보았다. 그것에 나의 어머니가 누워 있었다. 한 그루 나무뿌리처럼 뻣뻣하고 말이 없었다. 목이 잘린 어머니는 자신의 머리가 아닌 내 머리를 옆구리에 단정히 끼고 있었다. 나의 얼굴이 어머니의 웃음을 가지고 있었다. 물 밖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울고 있었다. 난생처음 나는 나의 울음을 타인의 입을 통해서 들었다.



*비정성시(非情聖詩):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유래된 성어로 비정하고 성스러운 도리라는 뜻을 담고 있으나 대만 감독 하우샤오셴이 1989년 영화(원작 소설 『非情聖詩 A City of Sadness』)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알려짐.
1)파오: 유목민들의 거주지.
2)마크툽: ‘그건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이미 씌어 있는 말이다’라는 뜻의 아랍어.





`

현탁님의 댓글

profile_image 현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꽃울음도 공부지만
겨울산의 서술이 더 맘에 와 닿습니다
하나하나 눈꼬리를 반듯하게 세우고 읽습니다 역시 시인의 절제된 감정이란 이래서 아름다운가 봅니다
저도 덕유산 향적봉을 다녀왔는데 청동은 커녕 너무 힘들었다는 생각만 남아있네요
저녁 늦게 내려와서 집에까지 오는데 몇 시간을 잤네요
좋은 글 읽게 해주셔서 감사요 샘, 소심해서 한줄 지웁니다
모른체 하기 없기요 ㅎㅎ

활연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쿨럭쿨럭, 저는 억수로 노인입니다.
이십년 차는 아무것도 아니라지만, 놀라지나 마십시오.
지팡이 어디 두었는지, 찾아야겠습니다.
만필.

안세빈님의 댓글

profile_image 안세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산에 대한 시를  접하면 총알이 마구 마구 글자를 명중시킵니다.
아주 잘 봤습니다.
글구! 무례하지만 겨울산 향적봉 훔쳐 토낍니다.
무례함을 용서하지  마소서!

이장희님의 댓글

profile_image 이장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마른 각피를 긁어대자 칼바람 냄새가 난다]
[능선엔 꽃이 버린 칼날이 수북하고 눈먼 나비떼가
 불의 뼈들을 흩뿌리고 있다]
활연님 시는 행복을 주는 것 같습니다.
시에 집중을 하게됩니다.
이 경음악 저도 좋아합니다.^^
좋은 시 잘 감상하고 갑니다.
송년모임 때 뵈요.^^
늘 건필하소서, 활연님.

활연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래전 글들이라 뭐 그렇고 그렇지요.
현대시가 서정성과는 거리가 있지만, 시 밑바닥은 서정이겠지요.
그런데 서정도 시가 되려면 참, 쉽지 않다.
공부도 염불도 잘 안 되는 일입니다.
화끈하게 봐요, 바지 내리고 갈게요.

동피랑님의 댓글

profile_image 동피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흰 모자, 흰 저고리, 흰 바지, 흰 양말까지  온통 새하얗게 차려 입은
겨울 나목은 눈부시다. 눈 시리다. 아니 차라리 내 안구 두 개를 바람이
오려다 나무 인중 우에 걸어둔다. 그러고도 나무는 희디흰 침묵이라니.
풍경은 말을 타서 시가 되고 시는 율을 타서 음악이 되고 그래서 청동에
귀라도 기울이면 오래전 죽었던 새의 노래가 흘러나오나 봅니다.
진정성이란 결코 세 치 혓바닥이 아니라 1,614미터 한겨울 향적봉에서
새벽을 향해 눈을 씻는 언 나무인 것이다.

참말로 환장하게 썼네예!
우산이 잘 팔리는 아침, 하늘이 한 국수 끓입니다.
바다가 같이 끓습니다.
저는 잡식성이라 아무깨나 잘 묵지만,
활연님은 면발 좋은 것만 드세요.^^

Total 6,173건 79 페이지
우수창작시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713 이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03 0 12-17
712 고현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33 0 12-17
711 초보운전대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23 0 12-17
710
조장(鳥葬) 댓글+ 6
윤희승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01 0 12-17
709 초보운전대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76 0 12-16
708
SOS 댓글+ 29
이경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7 0 12-16
707
진눈개비 뿔 댓글+ 23
시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08 0 12-16
706 기쁜 하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82 0 12-16
705 香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1 0 12-15
704
각인(刻人) 댓글+ 22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33 0 12-15
703
오가리 댓글+ 12
이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8 0 12-15
702 추영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84 0 12-15
701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86 0 12-15
700
텃세 댓글+ 6
나문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5 0 12-14
699
물결 운지법 댓글+ 23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08 0 12-13
698 김만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65 0 12-13
697 풍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90 0 12-12
696
언어의 바다 댓글+ 5
이기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04 0 12-12
695
낙타 댓글+ 1
이기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05 0 12-12
694 수련향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68 0 12-12
693 박커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54 0 12-11
692 이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66 0 12-11
691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51 0 12-11
690 徐승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13 0 12-11
689 香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57 0 12-11
688 윤희승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58 0 12-11
687 초보운전대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96 0 12-11
686 시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14 0 12-11
685 초보운전대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86 0 12-10
684
(이미지 7) 말 댓글+ 1
황룡강(이강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67 0 12-10
683 윤희승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55 0 12-10
682 붉은나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20 0 12-10
681 시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35 0 12-10
680 초보운전대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87 0 12-10
679
겨울동화 댓글+ 1
목동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26 0 12-10
678 윤희승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43 0 12-10
677 徐승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88 0 12-09
676 香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08 0 12-09
675
수면장력 댓글+ 11
가문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77 0 12-09
674 창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35 0 12-09
열람중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8 0 12-09
672 이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89 0 12-09
671 고현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44 0 12-09
670 윤희승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47 0 12-09
669 초보운전대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64 0 12-09
668 양철붕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36 0 12-08
667 그믐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85 0 12-08
666 초보운전대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85 0 12-08
665 雲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26 0 12-08
664 초보운전대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23 0 12-08
663 이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14 0 12-08
662 윤현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53 0 12-07
661 雲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88 0 12-07
660 임성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30 0 12-07
659 香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38 0 12-07
658 도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7 0 12-07
657
곡비[哭婢] 댓글+ 3
초보운전대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64 0 12-07
656 아무르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82 0 12-07
655 시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14 0 12-07
654 맛살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17 0 12-07
653
풀독 댓글+ 2
雲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65 0 12-06
652
함박눈 댓글+ 2
폭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98 0 12-06
651 초보운전대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59 0 12-06
650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74 0 12-05
649 핑크샤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08 0 12-05
648 윤희승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30 0 12-05
647 초보운전대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39 0 12-05
646 아무르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80 0 12-05
645
달마의 직업 댓글+ 5
고현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35 0 12-04
644
조련사 K 댓글+ 2
윤희승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10 0 12-04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