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설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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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자운영꽃부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383회 작성일 18-11-29 08:52본문
달이 찾아왔다.
쪼개져나간 얼굴 반면에 한밤중 봉긋 솟구치는 부용꽃이 매일 새 상처를 만들어주고 있다고. 그러면서 파꽃처럼 쓸쓸한 미소 지었다. 나는 늘 싱싱하게 솟아오르는 그 피를 핥았다.
우리는 창가에 앉아 마주보며 덧없이 부풀어오르는 등나무 덩굴의 파란 이름을 서로에게 불어 주었다. 서로의 얼굴에 얇은 사 보자기를 씌우고. 보이지 않는 것을 나는 보았다. 나의 폐를 닮은, 공기 가득한 방안에서는 달빛이 붉은 색이다. 그리고 형체가 점점 뭉그러진다.
달빛이 피부에 와 닿는 감촉이 안 씻은 삼벳단처럼 따가왔다. 나는 달빛을 손안에 잡았다. 나의 손안에 수많은 상처와 솜털같은 가시가 남았다. 하지만 달은 미끄덩 내 손안에서 빠져나가 버린다.
숨막히도록 밤하늘을 떠돌던 미세한 달빛 입자. 손끝에 고인 피 한방울처럼 조용히 허공에 멎어 있던 부용꽃. 입술 빨간 벼랑 위에 위태로이 흔들리던.
부용꽃이 달빛에 숨막혀 부슬부슬 떨어져 내리는 그 순간을, 나는 저 부용꽃잎이 차가운 땅 위에 누워 거듭 죽어가는 것이 높고 외로운 이의 운명인 듯하여 혼자 창밖을 바라본다. 이런 밤이면 아무리 기다려도 새벽이 오지 않았다.
댓글목록
부엌방님의 댓글
부엌방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부용꽃이 새색시 걸음으로 창을 넘을 듯 합니다.
시의 정수란 이런것이구나
딱딱하고 투박하고 나의 시는 언제나 부용꽃잎처럼 부드럽게
써 내려갈까요
시인님께서 알려 주시는 듯 합니다.
시 향에 푹 빠지고 간신히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부용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