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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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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자운영꽃부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64회 작성일 19-10-03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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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 많은 집이 있었다. 모두 빈 방이었다. 아무리 밤이 깊어도 오는 사람 하나 없었다.

 

가을빛이 더 이상 그럴 수 없도록 깊어진 밤

귀뚜라미 소리가 지친 잎들 위로 울려퍼지는 나직한 밤

고목나무 구부린 손가락이 부풀어오른 달을 찢어발기는 밤

후박나무 한 그루가 그림자 속에 들어앉아 사색에 잠기는, 

꿈꾸는 호흡이 짙어가는 밤.

 

水菊은 비어 있는 종이 같았다

아무 빛깔도 칠해 있지 않았다

아무 소리도 적혀 있지 않았다

여기 있는 빈 방들 중 하나인듯

그 속에서 나지막한 등불이 홀로 떠다니고 있었다.

 

빈 방 속에 떠오른 달 하나가 방의 경계를 넘어갔다

집 안으로 색채가 화려한 화음이 울려 퍼졌다

아무도 들어주는 이 없이 구석구석까지 먼지가 떠올랐다.

 

고장난 시계가 잠들지 못하고 우주의 고독을 계측하고 있는 방

자물쇠로 꽁꽁 채워진 형광등이 반질반질 닦여진 문지방을 넘어 

폐선 한 척 제 속에 가라앉히고 있는 방. 

박제된 부엉이가 발톱으로 제 날개를 긁는, 

한순간의 깜박임도 노오란 유리알을 두고 영겁인 방.  

 

방이 많은 집이 있었다. 방마다 모두 비어 있었다. 아무리 밤이 깊어도 오는 사람 하나 없었다.




 

[이 게시물은 창작시운영자님에 의해 2019-10-04 16:11:46 창작시의 향기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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