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정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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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자운영꽃부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3건 조회 553회 작성일 19-10-05 00:04본문
- 라라에게
햇빛이 새어드는 날카로운 성에의 궁전에서
질주하듯 지나간 직선과 예각의 교향악 속에서
성에를 빚어
여러 형상의 정신을 만들어낸다.
고통의 정원이다.
분출하자마자 허공에 얼어붙어 버리는
나도 몰랐던 내 표정들이,
얼음 깊숙이 음각(陰刻)된
너의 신경 가장 안쪽에서 만져진다.
투명함의 세밀한 농도를 조절하며
빛의 기하학 속에서 너의 정원을 구축한다.
측백나무 혼자 앙상한 발랄라이카를 연주하고 있는
불협화음의 흑요석 뚜껑이 닫힌 자리.
혈관마저 얼어붙어
저 눈부신 수수께끼와 조응하는 네 초상화의 무게를 알지 못한다.
작은 크리스탈 잔 안에 요동치는 빛이 너를 완전히
해체해 버린 이 정원에서
심장을 움켜쥐고 조용히 허물어지는
새하얀 신전의 기둥들.
잘려지고 있는 혈관 안으로 휘갈겨 쓴
卽興詩같은 암호 몇 개가 내 고통 안에서 뒹굴고 있다.
전에 듣지 못했던 고통의 새 리듬이
몇개의 絃 안에서 제 음향의 무게와 빛깔을
다른 모든 絃들이 험준한 것과 조화를 이루는 곳에서
언어 바깥의 언어에 충돌하고 있는.
얼굴 가린 날개가 퍼덕이다가
날개뼈가 근본부터 흔들리다가
가장 마지막에 견지하는 팽팽한 동작.
그 빛깔과 음향 내 꿈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이질적인 공간에
너를 앉히고 싶다.
하나의 絃이 울림으로써 그 울림이 지속되는 동안
혼자 격렬한 상흔 좌우로 찢어대는,
투명한 것을 사이에 두고 좌우대칭의
그 한쪽이 죄라면
다른 반대편에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널 조각하고 싶다.
댓글목록
라라리베님의 댓글
라라리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부제를 보고 순간 저인가 하고
허공에 얼어버릴려다 말았습니다 ㅎ
저는 음악이 주는 신비로움으로 읽히는데
꽃부리님의 시는 뭔가 형이상학적인
깊은 세계를 품고 있는 것 같아
감히 느낌을 말하기가 어렵기도 하고
한편으론 부럽습니다
그 풍부한 표현의 힘이 어디서 나오시는 건지
얼음정원의 구석구석을 만져보다 갑니다
잘 감상했습니다^^
자운영꽃부리님의 댓글의 댓글
자운영꽃부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라라리베님은 아니고요, 닥터 지바고에 나오는 그 라라입니다.
닥터 지바고가 라라에게 시를 쓰는 장면이 영화에 나오는데 저는 그 시가 늘 궁금했었습니다.
그래서 한번 써 본 것입니다.
모든 감각과 정신을 통틀어서 가장 순수하고 원초적인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다가 그 감각은 고통이다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얼음의 정원 = 고통의 정원으로 놓고 시상을 전개해 본 것입니다.
그런 철저하고 순수한 세계에 라라를 놓고 시상을 전개해 보았습니다.
사실 시상의 전개가 그렇게 활달하지 않은 습작입니다.
라라리베님의 댓글
라라리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제가 아닌 것은 당연히 알고 있고요ㅎ
제 아이디에 라라가 음악을 뜻하는 라라도 되지만
닥터지바고를 워낙 감명깊게 봐서
라라를 생각하며 넣은 것이기도 하거든요
그 라라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제 생각이 맞았네요
유리창을 덮은 성에꽃 속에
지바고가 고적한 책상 앞에서 펜을 들어 시를 써내려가던
그 장면이 저도 인상깊게 떠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