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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자운영꽃부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72회 작성일 19-10-30 10:24

본문



1. 

피아노 건반을 어루만지자 


파초잎이 그렇게 


파랗게 떠오는 


음 하나 하나 


형체를 모으지 못하고 


차갑게 산란하는 


비늘부터


낯설지 않은 


내 지문 가까이 닿는 


섬의 감촉이 까실까실했다 



2.

서로 다른 색채로 공명하고 있는 바이올린의 네 개 현처럼,


당신의 소멸로부터 


나도 모르는 내 표정이 싹 트고 꽃 피우기 시작합니다.


내게 고통이란 아무 의미 없어요. 고통도 오래 계속되면 습관이 되나 봐요. 


저절로 뻗어나간 날카로운 성에들이 양귀비꽃의 그 주홍빛 살점이 변색한 혀를 길게 날이 선 물결을 향해, 


어디까지가 음향이고 어디부터가 나입니까?


샹들리에를 닮은 여자가 투명한 자궁 안에서 발목이 잘린 태아를 내 놓습니다. 


호흡이 곤란해지면

빈 복도가 되어드릴께요.


그 여자가

떠나갔습니다.


내 빈 의자의 세포 안으로, 

자신의 가슴을 절개하여 죽은 심장을 보아달라고 했던 

쇼팽의 간절한 유언이 생각나는 밤입니다.



3.

조용히 내 통각으로 모여드는,

누군가 무너져 내리는 궤적 따라,


가을비를 듣습니다. 


물감을 좀 두텁게 칠해서 

청록빛 빗줄기 속 그 한가운데로 나아가면


빈 방 하나 있습니다.


그 방의 중심에서, 

누군가 나를 로 보아주고 있습니다. 손가락 끝에 닿는 것이 없어, 나는 늘 고독합니다.


발목이 잘린 꽃들을

나로부터 거두어가 주세요.


내 얼굴 위 접힌 자국에서

어머니를 맡으실 수 있을 겁니다.


어느 소녀가 탁자 위에 유리로 만든 투명한 종을 놓습니다. 


종소리가 사선(斜線)이 되어가더니,

길고 가느다란 은빛의 것들이 

내 망막 위 유리창을 가득 때립니다.


나는 조용히 익사하고 있는 배 위에 오릅니다. 혈관이 뛰는 소리가, 은빛 자글거리는 수면 위로 퍼져 나갑니다.



4.

한 오라기 빛이 아래로 내려간다. 수면에 거의 닿을락 말락하다. 그는 풀잎 속에 얼굴을 박고 엎드려 있었다. 또 다른 악장(樂章)을 준비하기 위해 그의 형체가 풀잎 안으로부터 일어섰다. 긴 지팡이같은 것을 몸 속에서 꺼낸다. 빈 꽃병 안에 시든 것들은, 그를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막을 수 없는 직선의 힘이 그를 풀잎의 일부가 되도록 만들었다. 그의 호흡은 타인을 위해 존재한다. 그의 형체가 웬지 비어 있다. 그의 표정이 무섭고 또, 그리워진다. 나는 그 비어 있음으로부터 리듬을 만들고 음조를 만들고 채워지지 않는 갈망의 색채들을 만들어내었다. 그가 다시 돌아온다. 얼굴이 허물어지자 파란 배 한 척이 물결을 거슬러서 배롱나무 가지 끝까지 올라왔다. 범선의 활짝 핀 돛 위에, 보랏빛 피 고인 그 손톱 안에, 나는 빈 병을 던진다. 목적 없이 탕진하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그는 석류꽃이 나고 변형되고 만발하는 그 안에서 새록새록 썩어가고 있다.






  



 


 













  


 



[이 게시물은 창작시운영자님에 의해 2019-10-31 15:28:12 창작시의 향기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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